여성, 저임금 고강도 서비스직 밀집
머리카락 안 흘러내리게 착용 강요
경험 바탕 ‘유주얼 서스펙트’ 선보여
과장된 자세·표정 통해 불공평 강조
작가 신민은 저임금 고강도 서비스직에 밀집된 여성 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거대 외국계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과 카페 등에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 검정 리본 머리망을 착용한 채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여성 노동자 군상을 만들거나 그려왔다.

‘우리는 왜 털을 징그러워할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들은 위생을 위해 통제되어온 노동자의 머리카락에 초점을 맞춘다. 서비스직 노동자는 늘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을 유지해야만 한다. 간혹 음식에서 발견되는 머리카락이 혐오감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노동자는 머리망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며, 자유롭게 머리를 기르지 못하는 두발 규제를 당한다.
작가는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착용하는 머리망이 자본주의 사회가 여성 노동자를 통제하는 시스템을 상징한다고 여긴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여성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여성성’과 이에 순응해야만 하는 이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고자 한다.
늘 종이를 주재료로 사용하는 작가는 매일 버려지는 엄청난 양의 감자튀김 포대 포장지를 활용해 작품을 만든다. 종이를 반복해서 붙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이 받는 감시와 자아가 억압되는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종이 조각들의 과장된 자세와 분노하는 표정은 여성과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의 불공평함을 강조한다.

종이는 쉽게 버려지고 잊혀지는 존재다. 그러나 덧붙이면 단단해지는 성질을 가졌다. 작가는 작품 안쪽에 여성 서비스직 노동자와 자신의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이 모든 위험에서 빗겨나가기를 바라는 기도문을 붙여 정령이 깃든 형상을 만들어낸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지를 여러 번 접어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소원을 적어 선물하기를 좋아했어요. 마음을 전하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겠다는 의도였죠.”
작가는 대학시절 아르바이트 등 10년 동안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 적 있다.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난 아니야, 너냐? 너 때문에 우리 매장 신뢰도 떨어지겠다. 별점 테러당할 거야’라며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는 표정들을 짓게 돼죠. 솔직히 주문에 쫓겨 바쁘게 일하다 보면 동료들이 미울 때도 있어요. 난 꽤나 오랜 시간 참고 있는데, 화장실 자주 다녀오는 동료를 보게 되면 …·. 그래서 ‘나는 내 동료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글귀를 적어넣은 작품도 있어요. 하하.”

신민의 개인전 ‘으웩!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5월17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P21(피투원) 갤러리에서 열린다. 서비스직 노동자, 작가,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었던 부당함과 억압에 대한 감정을 머리카락이란 소재에 담아 풀어낸 신작 ‘유주얼 서스펙트’시리즈를 선보인다.
품고 있는 내용과 의도에 비해 정작 작품의 캐릭터가 주는 인상은 ‘재밌다’, ‘친근하다’여서 인기가 높다. 올해 3월 열린 2025 아트바젤 홍콩에서 MGM 디스커버리 아트 프라이즈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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