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의견 표명을 ‘대선 개입’ 몰아가
당내에서조차 신중론 분출… 폭주 멈춰야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가 16일 “국회가 가진 권한을 모두 사용해 사법 대개혁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경우 현재 진행 중인 그의 형사재판 중지 여부와 관련해 대법원이 “담당 재판부의 판단에 달렸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나온 발언이다.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형사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를 (사법부가)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다”며 “대법원이 또다시 대선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린 뒤 시작한 사법부 겁박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이 후보의 주요 재판을 앞두고는 사법부 달래기용 판사 증원·사법부 예산 증액 등에 앞장섰으나 대법원이 유죄 취지 판결을 내리자 태도를 급선회했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소추’라는 개념이 수사기관에 의한 수사 및 기소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법원 재판도 포함하는지는 법조계와 법학계에서 논쟁이 치열한 사안이다. 현재로서는 어느 쪽이 다수설이라고 평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법률 전문가도 아닌 박 원내대표는 대체 무엇을 근거로 ‘재판은 소추의 일부’라는 식으로 단정 짓는가. 헌법 조항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장본인은 대법원이 아니고 이 후보와 박 원내대표 그리고 민주당이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담당 재판부의 판단에 달렸다”는 대법원의 입장 표명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이것이 박 원내대표 주장대로 ‘대선 개입’이라면 대선을 불과 20일 앞두고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을 국회로 불러 청문회장에 세우려 한 민주당의 시도야말로 더 심각한 대선 개입이 아닌가.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후보 측 공동선대위원장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 총괄선대위원장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을 중심으로 대법원 겁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같은 정계 원로는 “사법부 흔들기가 오히려 표를 갉아먹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이들의 고언을 받아들여 당장 도넘은 압박을 멈춰야 한다.
2018년 국내에서 출간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붕괴 사례를 연구한 베스트셀러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렛 두 교수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정치권력에 의한 사법부 장악이야말로 민주주의 붕괴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책에는 대법관 정원을 늘린 다음 정권이 조종하는 법률가를 대거 대법관으로 임명해 정권에 유리한 판결만 나오게끔 만든 여러 나라 독재자들의 수법이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최근 민주당이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100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과 판박이가 아닌가. 요즘 민주당의 행태는 몇 해 전 석학들이 경고한 ‘민주주의 붕괴’의 서막을 보는 듯해 섬뜩하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