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고물가에 쌀 가격 1년새 2배 올라
5㎏ 2만원선에 팔자 3시간 만에 완판
참의원 선거 등 앞두고 해소책 주목
與, 전 국민 현금지원책 꺼냈다 철회
野 중심 분출 ‘소비 감세’ 국민들 호응
제1야당 입헌민주당도 감세파에 합류
日언론 지난 5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68% “감세 추진 정당·후보자에 투표”
정부·여당 지도부는 부정적 입장 견지
“소비세는 사회보장제 지탱하는 재원”
일각선 국채 발행해 재원 마련 주장도
美 관세 조치 경제·민생고 가중 변수로
지난 2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있는 대형 마트 이온몰 아쓰타점. 오전 8시 개점 전부터 1000여명이 길게 줄을 섰다. ‘반값 비축미’ 판매 시작 소식을 듣고 몰려든 고객들이었다. 한 주부(75)는 마이니치신문에 “식비를 줄이는 게 너무 힘들다”며 “2시간 동안 서 있느라 고단했지만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1년 전의 2배인 5000엔(약 4만7500원)대에 팔리는 일반 쌀의 절반 이하 가격인 2138엔(2만원)에 내놓은 5㎏짜리 비축미 4200봉지는 이날 11시쯤 ‘완판’됐다.

꺾일 줄 모르는 쌀 가격은 일본 고물가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직장인 임금이 올해 춘투를 통해 3% 올랐지만, 물가를 반영한 실질임금은 전년도에 비해 오히려 0.5% 감소했다. 쌀값 급등 등으로 소비자물가지수가 3.5% 뛰었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폭이 작은 중소·중견기업 직장인들의 고충은 더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조치로 경제·민생고는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저는 쌀을 산 적이 없다. 지원자분들이 많이 주셔서 집에 팔 정도로 있다.” 이 와중에 나온 에토 다쿠 전 농림수산상의 발언은 서민 가슴에 못을 박았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그를 유임하려던 뜻을 하루 만에 거두고 사표를 받았다. 지난해 10월 이시바 내각 출범 후 첫 각료 경질이었다. 고이즈미 신지로 신임 농림수산상은 취임 사흘째인 지난달 23일 현장 시찰을 나간 사진을 올리고서 전임자 보란 듯 “마트 선반에 쌀이 드문드문 있다”며 “비싼 가격, 품귀 상황의 쌀 가격을 안정화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는 비축미 공급을 경쟁입찰에서 수의계약으로 바꿔 ‘2000엔 비축미’ 공급을 기어이 이뤄냈다.
도쿄도의회 선거(6월22일), 참의원(상원) 선거(7월 말 예정)를 앞둔 일본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민생고 해소책이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선심성’ 논란에 현금지원책 거둔 與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애초 꺼내든 고물가·관세 대응책은 전 국민 현금 지급 방안이었다.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1인당 5만엔(47만5000원)가량의 현금을 지급해 가계를 돕겠다는 취지였다.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저소득층에도 확실하게 지원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유력하게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시기가 미묘했다. 이 구상은 미국의 보편관세 발표 직후인 지난 4월9일 처음 알려졌다. 당시 이시바 총리는 초선 의원들에게 10만엔(95만원) 상당 상품권을 뿌린 일로 궁지에 몰린 처지였고 중요한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다. 야권에선 ‘선심성 퍼주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급받은 현금을 저축으로 돌릴 수 있어 ‘소비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부정적 여론은 결정타가 됐다. 주요 언론 여론조사에서 ‘반대’가 절반을 넘었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서는 지원금 지급이 효과적이라는 응답이 19%에 그쳤다. 당내에선 “선심성이라는 비판만 받으면 역효과”라는 푸념이 나왔고, 이시바 총리는 결국 이 카드를 접었다.

◆야권 “소비세 줄여야”
야당을 중심으로 최근 분출한 주장은 ‘소비 감세론’이다. 현행 소비세율 10%(식음료품 등은 8%)를 낮추거나 아예 폐지해 간접적으로라도 가처분소득을 늘리자는 것이다.
감세는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소비 촉진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본 싱크탱크 노무라종합연구소에 따르면, 1인당 5만엔씩 현금으로 지급할 경우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0.25%가량 끌어올리는 효과가 발생한다. 반면 이와 똑같은 규모(총액 6조엔 상당)로 소비세를 줄이면(2.5%포인트 인하) 명목 GDP는 0.51% 오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현재 일본유신회는 2027년 3월까지 식료품 소비세 한시적 철폐를, 국민민주당과 일본공산당은 당분간 모든 소비세를 5%로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중의원(하원) 선거 때는 소비세 인하·폐지 대신 소비세 세액공제 제도 도입을 공약했던 제1야당 입헌민주당도 이번에는 감세파에 합류했다. 식료품 소비세율을 내년 4월부터 1년간 0%로 낮춰 국민 1인당 4만엔(38만원)가량의 지출 절감 효과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입헌민주당은 올해 안에 1인당 2만엔(19만원)씩 현금을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여론은 야당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17, 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소비 감세를 추진하는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투표하고 싶다는 응답은 68%로, 투표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28%를 크게 웃돌았다.

◆정부·여당 지도부 “감세는 안 돼”
자민당 내에도 소비세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정권 핵심 지도부는 부정적이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소비세는 사회보장 제도를 지탱하는 주요 재원”이라며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사회보장에 들어가는 돈이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대체 재원 확보 방안 없이는 감세를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비세수는 2025년도(올해 4월∼내년 3월) 예산 기준 24.9조엔(236조원)으로 일본 일반회계세수 약 77.8조엔(738조원)의 약 30%를 차지한다. 이 중 지방 소비세분을 제외한 약 80%가 의료·개호(노인 돌봄)·연금과 육아 지원금으로 쓰인다.
야권 일각에서는 국채 발행을 통해 대체 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지난해 기준 236.7%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올해만 해도 20조엔(190조원)가량의 적자 국채 발행이 예정돼 있다. 이시바 총리가 지난달 19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권의 소비 감세 주장에 대해 “일본 재정 상황은 그리스보다 나쁘다”고 일축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자민당 모리야마 히로시 간사장도 “나라가 빚을 갚지 못하면 국제적 신용은 제로가 되고 금세 재정이 파탄날 수 있다”고 했다.
소비세 인하에 필요한 행정 사무 부담 증가, 한 번 내린 세금은 다시 올리기 어렵다는 점도 난제로 꼽힌다.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가 지난달 21일 당수 토론에서 “감세도, 현금 지급도 하지 않는다니 무대책 아니냐”고 추궁하자 이시바 총리는 “소비 감세 주장은 선거 목적에 지나지 않는다. 마트 등 계산대 시스템을 바꾸는 데만 1년은 걸린다”고 맞받았다.

아사히 조사에서 72%가 ‘소비 감세를 주장하려면 대체 재원을 제시해야 한다’고 답해 여론도 방만한 감세에는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뉴스네트워크(NNN)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의 한 측근은 “감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자민당에 투표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자민당이 새삼스럽게 감세 주장에 동조해 봐야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시바 총리는 4일 산케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소비세 감세 공약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결국 자민당은 현금 지원이나 소비 감세 공약 대신 휘발유값 인하, 여름철 전기·가스요금 지원 등만 가지고 선거를 치를 공산이 크다. 대신 쌀값이 진정된다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시바 총리는 “6월 중반에는 (쌀값이) 3000엔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참의원 선거 공약 초안에 식음료품에 적용되는 소비세 경감세율을 현행 8%에서 5%로 항구적으로 인하하는 내용을 집어넣어 여권이 고물가 대응책을 놓고 분열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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