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비·건설투자 부진과 미국발 관세 충격으로 부진의 늪에 빠진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20조2000억원(세출 기준)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전 국민에게 소득수준별로 1인당 15만원에서 50만원을 주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후보 시절 공약으로 밝혔던 취약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빚 탕감 대책도 추경안에 포함됐다. 한국은행이 성장률 전망치를 0.8%로 제시한 가운데 이번 추경안이 1%대 성장률 사수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9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고 경기 진작과 민생 안정을 위해 20조2000억원의 추경안을 심의·의결했다. 지난 5월1일 확정된 13조8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에 이어 두 번째 추경이다. 정부는 국세수입이 전망치보다 적게 걷힐 것을 감안해 줄어드는 세수만큼 국채 등을 발행해 메우는 세입경정도 10조3000억원 규모로 시행한다. 올해 편성된 예산을 정상적으로 쓰기 위한 세입경정까지 포함하면 2차 추경 전체 규모는 30조5000억원이다.
정부는 13조2000억원(국비+지방비)을 투입해 전 국민(5117만명)에게 1인당 15만~50만원을 소득별로 지급하기로 했다. 소비쿠폰은 두 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지급된다. 우선 전 국민에게 1인당 15만원을 지급하되 차상위계층(38만명)과 기초수급자(271만명)에게는 각각 30만, 40만원이 차등 지급된다. 1차 지급분은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약 2주 안에 지급될 예정이다. 아울러 농어촌 소멸지역인 84개 시·군에 있는 411만명에게 1인당 2만원이 추가 지원된다. 정부는 2차로 건강보험료 등을 통해 도출한 상위 10%(512만명)를 제외한 국민의 90%에게 1인당 10만원을 추가 지급할 계획이다. 소비쿠폰은 현금을 제외한 지역화폐, 선불카드, 신용·체크카드 중 한 가지 방식으로 지급되며 사행·유흥업종은 사용처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이와 함께 장기간 빚을 갚지 못해 상환능력을 상실한 이들의 장기연체채권을 매입해 일회성 소각을 해주기로 했다. 7년 이상 된 5000만원 이하 113만명의 부실 채권이 대상으로, 정부와 금융권이 각각 4000억원씩 재원을 투입해 시행한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까지 2차 추경을 통한 성장 제고 효과를 0.1%포인트로 추정했다.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직접효과 이외에 새 정부 정책 의지나 소비자, 기업, 국민 등의 경제심리에 미치는 간접효과도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추경을 위해 19조8000억원의 추가 국채가 발행되면서 올해 말 국가채무는 1300조원을 넘어서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49.0%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시행 배경은
정부가 2020년 4월 긴급재난지원금을 편성한 이후 약 5년2개월 만에 비슷한 형식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카드를 꺼내 든 건 경기 부진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등 주요 기관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 위기’ 상황이 아님에도 올해 한국의 성장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간 재정이 경기 방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도 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나선 배경이다. 실제 성장률이 2023년 1.6%, 지난해 2.0%에 머물렀지만 이전 정부는 대규모 감세 속 건전재정을 고집하면서 총지출 증가율은 2024년 2.8%, 2025년 2.5%(본예산)에 그쳤다.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은 “재정의 투입이 늦어질수록 경기 반등이 지연되고 서민과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올해 총지출은 전년보다 6.9% 늘어난다.
정부가 19일 발표한 2차 추경안에는 전 국민에게 최소 15만원을 지급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외에 경기 진작과 민생 안정을 위한 대책이 망라됐다.
추경안에 따르면 정부는 국비 6000억원을 추가 투입해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을 연간 최대 규모인 29조원 발행하기로 했다. 지역화폐는 지자체가 액면가에서 5~10%를 할인해 발행하는 일종의 상품권으로 중앙정부가 할인액의 일부를 지원한다. 정부는 국비지원율을 차등 상향해 소비자가 체감하는 할인율을 최대 15%까지 높일 방침이다. 소비자할인율은 인구감소지역은 15%, 비수도권 13%, 수도권 10%, 경기도 등 재정자립도가 높아 보통교부세를 받지 않는 지자체는 최소 7%로 책정됐다. 또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비용의 10%(30만원 한도)를 환급해 주기로 했다. 에너지 효율 등급제를 적용 중인 11개 품목(냉장고, 에어컨 등)이 대상이다. 아울러 숙박, 영화 관람, 스포츠시설 등 5대 분야의 소비 진작을 위해 할인쿠폰 780만장도 선착순으로 제공한다.

◆“건설투자 재정 투입 적은 점 아쉬워”
부진의 늪에 빠져 있는 건설 경기를 살리기 위해 2조7000억원이 투입된다. 우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지원을 위해 단계별로 맞춤형 유동성을 5조4000억원 공급한다. 자금조달이 어려운 사업장에 특별 보증, 정부 출자 리츠를 통해 3조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실시하고, 지방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2028년까지 준공 전 미분양 주택 1만호를 환매조건부로 매입한다. 아울러 철도·항만 등 사회기반시설 조기 착·준공 지원에 1조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평택-오송 2복선화, 호남 고속철도 등 국가기간망의 조속한 완성을 추진하는 한편 노후 일반철도 구조물 개선, 국가하천 정비 등에도 약 5000억원을 투입한다.
고용안전망 강화와 취약계층 지원 등에 3조6000억원이 반영됐다.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고용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구직급여 지원 인원을 종전 161만1000명에서 179만8000명까지 확대한다. 또 국민취업지원제도 대상 인원을 36만명까지 늘리는 한편 건설업 실직자 1만명(소득 무관)에게 훈련수당 20만원을 추가 지원하는 등 특화 유형도 신설한다. 무주택 청년·신혼부부의 주거 안정을 위해 시세 대비 저렴한 전세임대 3000호를 추가 공급하고, 저소득 청년을 위한 월세 지원 대상도 종전 13만명에서 15만7000명까지 늘린다. 월세 지원은 중위소득 60% 이하 무주택 청년을 대상으로 24개월 동안 최대 월 20만원 지원된다. 저소득 가구의 생계를 지원하는 긴급복지 지원 제도 대상도 33만1000명에서 35만8000명으로 늘린다.
전문가들은 이번 추경안으로 경기 회복의 동력이 생길 수 있다면서도 건설 부문 재정 투입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역 소상공인이나 지역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구성으로 단기적인 내수 진작 효과는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현금성 지원은 일회성 소비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지속성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건설투자 같은 경우 연관효과가 크기 때문에 효과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배정이 상대적으로 적은 점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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