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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너’라고 부른 마크롱·푸틴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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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03 08:53:57 수정 : 2025-07-03 08:5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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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유’(you)에 해당하는 2인칭 대명사가 프랑스어에는 두 개 있다고 한다. ‘튀’(tu)와 ‘부’(vous)가 그것이다. 튀는 ‘너’, 부는 ‘당신’을 각각 뜻한다. 튀에 비하면 부가 높임말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처음 만난 사이에는 반드시 부를 써야 한다”고 조언한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튀라고 했다가는 무례한 인간 취급을 받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어지간히 친해져 서로 편안한 관계가 되었을 때 비로소 튀라고 부를 수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1943)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대단히 많다. 50여년 동안 숱한 한국어 번역본과 그 개정판이 국내 독자들에게 선보였다. 그런데 2017년 외국 문학 작품 전문 번역가인 이정서 작가가 그간 나온 작품들의 오류를 지적하며 새로운 ‘어린 왕자’를 선보였다. 그는 “기존 책들은 프랑스어 ‘튀’와 ‘부’의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어린 왕자’의 섬세함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22년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으로 방문해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프랑스 언론은 마크롱이 바이든을 부를 때 격식을 갖푼 ‘부’ 대신 친근한 ‘튀’를 쓴 점을 들어 미국·프랑스 관계가 한층 더 가까워진 것으로 평가했다. 정작 미국 측은 이런 미묘한 어감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영어의 경우 존칭의 구분이 없다 보니 프랑스어로 튀라고 하든 부라고 하든 모두 ‘유’로 번역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2022년 2월7일 모스크바를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나 군사 행동을 만류하고 있다. 당시 길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은 두 사람의 간격이 너무 멀어 화제가 됐다. AP연합뉴스

지난 1일 마크롱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다. 두 정상이 직접 대화를 나눈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첫해인 2022년 9월 이후 거의 3년 만의 일이다. 통화가 끝나고 엘리제궁은 통역 과정에서 마크롱과 푸틴 둘 다 서로를 ‘부’ 아닌 ‘튀’라고 부른 점을 강조했다. 그만큼 대화 분위기가 격의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우크라이나에서의 휴전 합의 등 눈에 띄는 성과는 없으니 부와 튀의 차이가 퇴색하고 말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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