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족’ 취업 후 사내결혼 ‘공부족’으로
“정년 보장되고 육아·노후 등 안정적”
‘부부공무원 中企 사장 안 부럽다’ 속설
합격 직후 연수원 때부터 ‘짝짓기’ 사활
‘업무 공감’ 도움 되지만 평판 부담 커
동료들 불편히 여기면 팀워크 악영향
남편 구설 부인에 연결 승진 불이익도
가족 근무사실 숨기는 ‘스텔스족’ 등장
지자체마다 인사철 ‘가족 제척’ 비상
‘가족 간 떼어놓기’ 최우선 지침 돼버려
뒤늦게 인척관계 인지해 전면 재인사도
‘능력 따른 인사’ 원칙 못 지켜 주객전도

#2. 충북 청주시청 인사담당자는 인사철마다 부부 및 가족 공무원 분리배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담당자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해야 하는데, 제척해야 하는 인원이 많다 보니 인사담당자는 물론 대상자 모두 결과에 대한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취업난 속 직업 안정성 선호로 공직사회 내 ‘동질혼(同質婚)’ 현상이 심화하면서 부부 공무원이 늘고 있다. 동질혼이란 소득, 학력, 사회적 지위 등에서 비슷한 조건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최근엔 부부 공무원은 물론 부모·자식 간 등 가족을 넘어 형부·처제, 4촌 등 친인척 공무원들이 많아져 지방자치단체 인사부서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공시족에서 공부족으로… “육아·노후 안정적”
수년간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공부에 매진한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생)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무원이 되면 또 다른 꿈을 향해 달린다. 이른바 ‘공부족’(부부 공무원)이다. 부부가 공무원이면 중소기업 사장에 버금간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공무원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교육연수원부터 인연 찾기가 시작된다. 충남 당진시 한 공무원(30)은 “연수원에서 커플이 되고 싶어서 일부러 반장을 맡았다”며 “연수원에서 나름 커플 맺기 경쟁(?)이 있는데 좋은 인연을 만나 지난해 공부족이 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부부 공무원이 늘어나는 이유로는 정년이 보장돼 결혼, 출산, 육아, 교육 등에서 시간·경제적 여유가 있는데다 공무원연금으로 퇴직 후 노후 생활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공직 진출이 늘고 있는 것도 공부족 증가 요인이다. 30년차 부부 공무원인 대전시의 한 사무관은 “둘 연봉을 합치면 1억원이 넘고 자식 돌봄이나 교육비 측면에서도 혜택이 많다”며 “퇴직한 뒤 부부 연금이 월 500만원 이상인 것도 부부공무원의 이점”이라고 말했다.
부부·가족 공무원은 업무에서도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동생과 함께 경북도청에서 근무하는 김모씨는 가족 공무원의 장점으로 ‘정보 공유’를 꼽았다. 김씨는 “형제가 같은 공무원이다보니 내부 정보 공유가 빠르다”며 “업무 경험치를 높일 수 있고 기본 업무 외에도 내부 시스템이나 분위기 등에 대한 적응이 빠르다”고 말했다.
◆평판 부담에 ‘스텔스 공부족’ 등장도
부부·가족 공무원이라고 해서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같은 공공기관에 근무하다보니 남편에 대한 평판이 아내로까지 이어지거나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대전시교육청의 15년차 부부 공무원 박모씨는 “청내에서 대부분 우리가 부부인 것을 알기 때문에 평소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면서 “상대로 인해 부부가 같이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많아 서로 조심하자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울산지역 부부 공무원인 한모(52)씨는 오히려 연금 등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한씨는 “부부 공무원의 경우 사망시 유족 연금이 다른 공무원의 절반으로 깎인다”며 “단지 부부라는 이유로 유족 연금의 50%밖에 받지 못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아쉬워했다.
서로가 업무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점은 ‘양날의 칼’이다. 포항시청에 근무하는 김모(55)씨는 “승진이나 부서 배치 때 신경을 안 쓸 수도 없어 난감할 때가 있다”며 “수당이나 성과급 등이 언제, 얼마나 나오는지를 훤히 알고 있어 내 평생 ‘뒷주머니’ 챙기는 것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부나 가족이라는 사실을 동료에게 숨기는 ‘스텔스족’도 생기고 있다. 부산시청에 근무하는 한 7급 공무원은 입직했을 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처지가 됐다. 그는 “아버지가 30년 가까이 공무원 생활을 하셨는데 첫 발령 부서가 아버지와 같은 사무실이었다”면서 “당시 주위 눈치를 보느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는데 나중에 직원들이 왜 얘기를 안 했느냐고 해서 꽤 민망했다”고 말했다.
◆“적재적소 인사보다 타 부서 배치가 우선”
부부·가족 공무원이 늘어나면서 인사철마다 각 지자체에선 비상이 걸린다.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게 인사원칙이지만 부부나 친인척을 같은 부서에 근무하지 않게 하는 ‘제척’이 우선적인 지침이 됐다. 인사담당자들은 인사 때마다 ‘가족 공무원 명단’을 업데이트하는 게 일상이 됐다. 전·후반기로 나눠 업데이트를 위한 조사에 돌입한다.
조사를 해도 얘기하지 않는 ‘스텔스 부부’나 ‘친인척 공무원’이 늘면서 업무는 가중되고 있다. 특히 최근엔 부부뿐 아니라 부모·자식 간을 넘어 형부·처제 등 배우자의 친인척까지 걸러내면서 업무는 2∼3배 늘었다는 게 인사담당자들의 하소연이다.

대전시청 인사담당관은 “지난 1월 신년 인사를 냈는데 알고보니 같은 부서에 형부·처제가 있었다”며 “한두 명을 재조정 하려면 몇 개 부서 인사까지 뒤흔들어야 해 여간 힘든 게 아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심지어 같은 부서도 아닌데 같은 층에 근무한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어 그때마다 판 전체를 흔들게 돼 더 어렵다”고 말했다.
전북도청 인사담당자는 “부부 등 가족이나 친인척 관계의 공무원은 업무 이해도나 추진 등에 있어서는 효율적일지 몰라도 우선 동료들이 불편하게 여기고 원활한 팀워크 발휘에도 부작용이 있다”며 “당사자들도 이를 당연시 여기고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전북도청의 경우 지난달 정기인사에서 서기관인 남편이 6급인 아내 부서에 발령 나자 아내가 전보제한(2년) 기간임에도 타 부서로 이동 조처했다.
늘어나는 부부·가족 공무원과 인사상의 제척 지침으로 일부에선 주객이 전도됐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충북지역 한 지자체 인사담당자는 “승진 대상자의 경우 업무 역량 등 능력을 봐야 하는데 제척을 우선순위에 두다보니 고충이 있다”며 “가족 공무원은 느는 추세고 장기적으로는 부서에 필요한 인력이면 업무 능력 위주로 배치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공무원 인사관리는 직위의 직무 요건과 공무원 전문성, 역량 및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라며 “그러나 배우자 등 가족과의 거주·육아 등 공무원의 고충 해소를 위해 필요한 경우 전보 또는 인사 교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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