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간판급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의 ‘아성’이 위태롭다. YG소속 일부 가수들의 마약 투여 및 구매 의혹에다, 양현석 전 대표프로듀서가 경찰 수사 무마 및 유착 의혹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일부 스타급 소속 연예인들이 이탈 조짐도 보이고 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YG가 소속 가수들의 마약 논란으로 ‘약국’(YG)이라는 오명을 쓸 만큼, YG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곤두박질 쳤다”며 “이미지를 관리해야 하는 배우로서는 소속사 이전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단계”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최근 YG 소속 연기자 A, B, C, D 등은 소속 기획사를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YG 소속 연기자 가운데 일부는 외부의 다른 기획사들과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외부 기획사들은 이들이 소속사를 옮길 경우 YG와의 전속계약 해지와 관련해 변호사를 선임해준다는 등 구체적인 조건도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지상파 방송사 프로듀서는 “YG란 이름만으로도 프로그램에 캐스팅될 정도로 한때 큰 힘을 발휘했으나, 연일 터지는 마약 논란 때문에 방송계에서 YG 소속 연기자들을 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약 등 각종 의혹이 소속 가수 쪽에서 나왔지만, 같은 기획사라는 이유만으로 연기자들도 마약을 복용했을 거라는 의심을 받게 된다”면서 “특히 CF 등이 주 수입원인 연기자에게는 이러한 의심이 활동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송계 뿐만 아니라 화장품, 의류, 광고계 등에서도 YG 소속이라는 이유로 기피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아직은 당장 계약을 해지하는 등의 움직임은 없지만, 재계약이나 신규 계약 과정에서 기피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광고계 한 AE는 “평소 깨끗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해 광고 모델로 기용했는데, 나중에 해당 연기자가 마약을 했다는 게 밝혀지는 경우가 생긴다면 상품은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며 “피해를 보지 않으려는 심리 때문에 YG 소속 연기자들을 채용에서 우선 배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설령 마약 논란이 아니더라도, YG 소속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대중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온라인상으로 퍼지고 있는 ‘YG 불매’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YG 소속 가수들에 대한 일종의 ‘낙인’으로, YG 소속이라는 이유를 들어 해당 가수의 노래를 듣지 않는 행위를 뜻한다. 처음 대학가 축제에 YG 소속 가수들을 섭외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곧 SNS를 통해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YG 소속 가수들의 음원을 재생하지 않는 것으로까지 확산했다. 문제는 마약 등의 논란을 일으킨 가수나 그가 속한 그룹에게만 불매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3년만에 컴백한 가수 이하이의 타이틀곡 ‘누구없소’에 비아이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이 때문에 이하이의 노래도 불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멤버 이찬혁의 전역으로 본격적인 활동이 기대됐던 ‘악동뮤지션’ 역시 불매의 대상이 되면서 앞으로의 행보가 불투명하다.
업계에서는 소속 연예인들의 전속계약 해지 여부에 대한 입장이 나뉘고 있다. 기획사가 각종 논란으로 문제를 발생, 소속 연예인이 피해를 봐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과 소속 연예인 등의 개별적인 잘못일뿐 기획사의 직접적인 잘못이 아니라는 주장이 맞선다. 전자는 계약 해지가 가능하며, 후자는 불가능하다.
김보람 변호사(법무법인 평원)는 “전속계약은 상호신뢰 관계가 바탕이 되는 것”이라며 “이 신뢰관계를 도저히 이어갈 수 없을만큼 아주 중대한 사유가 발생했다면 해지 요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대한 신뢰관계 파탄이 있었는지를 재판부에서 어떻게 판단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다를 것”이라고 첨언했다.
대개 소속가수 일방의 의무에 치중돼 있는 연예기획사 전속계약서의 특성상, 소속사의 잘못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민성 변호사(법무법인 에이스)는 “소속 연예인의 피해와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을지가 문제”라며 “얼마나,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 산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귀띔한다.
YG는 1990년대 대중음악계를 풍미한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의 양현석이 설립한 회사다. 지누션, 원타임, 세븐, 빅뱅, 투애니원 등 소속 가수들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국내 3대 연예기획사로 성장했다. 또한 정상급 스타 배우 등을 영입해 방송계 연기 부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소속 가수들의 마약 논란으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성공의 발판이 됐던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을 시작으로 같은 그룹의 탑, 걸그룹 ‘투애니원’의 박봄, 프로듀서 쿠시가 마약 구입 등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마약 및 성매매 알선 등의 ‘버닝썬 사태’와 양 대표의 성 접대 및 마약 관련 혐의 수사 무마 의혹 등이 터지면서 YG에 대한 팬들의 배신감과 실망감이 더욱 커졌다. 여기에 최근 ‘사랑을 했다’로 인기를 누린 보이그룹 ‘아이콘’의 리더 비아이까지 마약을 구매하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이미지 추락의 가속패달을 밟았다.
YG는 소속 가수들이 경악스러운 사건으로 포토라인에 설 때마다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해 대중의 몰매를 맞았다. 양현석은 버닝썬 사건이 불거진 올해 1월 31일에도 공식 블로그에 승리를 두둔하는 글을 올렸다. 그룹 아이콘의 비아이 마약 의혹이 불거진 2016년에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고, 최근 신고자를 협박했다는 의혹까지 나와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탈세혐의와 관련 국세청 특별세무조사도 진행 중이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체계를 갖춘 회사라면 문제의 소지가 있는 연예인을 일찌감치 내보내는데, 아무리 실력 좋고 스타성이 있다해도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YG가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 없이 단기적 이익에 급급했던 게 아닌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