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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만 들어가면 車 라디오 ‘지지직’… 재난 발생 땐 치명적 [이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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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13 10:00:00 수정 : 2022-02-15 17: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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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 돕는 ‘재방송 설비’ 확대 목소리
2014년 터널 수신 장비 설치 의무화 불구
전국 고속도 상당수 터널 수신상태 불량
라디오 볼륨 낮추려다 사고 날 뻔하기도
위급할 때 재난방송 듣지 못 해 가장 문제

설비 노후화로 감도 떨어지는 곳도 많아
일반 터널은 더 열악… 강원 75% 수신 안돼
고속도 터널 1002곳, 골든타임 7분 놓쳐
터널 사고 사망률 일반의 2배… 개선 시급

화물트럭 운전기사인 김모(61)씨는 운전할 때마다 라디오를 켠다. 장거리 운전에 나서면 하루 6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는 김씨에게 라디오는 ‘세상을 접하는 창구’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라디오를 듣다 보면 가끔 불편할 때가 있다. 고속도로와 국도의 터널에 진입했을 때 방송이 끊기는 구간이 많기 때문이다. 김씨는 “고속도로를 달릴 때 터널에 들어가면 라디오가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짧게는 2∼3초, 길게는 10초 이상 수신이 끊긴다”면서 “어두운 터널 안에서 라디오 기기를 조작하다가 자칫 교통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고속도로나 국도 등 도로를 주행하는 운전자 대다수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교통정보를 얻거나 장시간 운전의 지루함을 달랜다. 라디오는 TV는 물론 유튜브 등 뉴미디어에 밀려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애청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임에도 차량이 터널에 진입하면 라디오 수신 상태가 고르지 못한 구간이 생긴다. 특히 터널은 어둡고 폐쇄적인 구조로, 재난방송 청취가 그 어느 곳보다 중요하다. 라디오 방송장비 설치를 확대하고 낡은 장비는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 12월 10일 경북 성주군 성산읍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현장. 경북소방본부 제공

◆고속도로 터널 34곳, 라디오 수신장비 설치 안 돼

터널에서 라디오 청취를 돕는 장비는 ‘라디오 재방송 설비’다. 11일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전국 고속도로 내 전체 터널 552개소 중 약 6%인 34곳은 이 같은 설비가 설치되지 않았다. ‘200m 미만 터널’의 라디오 재방송 설비 설치는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4년 6월 개정된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은 터널과 도로 등에서 라디오와 DMB를 수신할 수 있는 중계설비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터널이 대피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데다 생명, 안전과 직결된 재난방송과 민방위 경보를 원활하게 수신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법 개정 8년이 지났지만 전국 고속도로 터널 내 라디오 수신상태가 불량한 구간이 상당하다. 위급상황 발생 시 재난방송 청취가 어렵자, 고속도로 이용객은 통행료를 내는데 왜 이런 고질적인 라디오 끊김을 겪어야 하느냐고 불만을 나타낸다. 영업직 특성상 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한다는 이재훈(35)씨는 “터널만 진입하면 라디오 수신이 끊기면서 잡음이 생겨 진입 전에 아예 전원을 끄는 게 습관이 됐다”면서 “십수년째 라디오 끊김 현상이 고쳐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정민(42·여)씨는 “고속도로 터널에만 들어서면 차량 라디오 수신 감도가 떨어진다”며 “그럴 때면 볼륨을 낮추는데, 위험 상황 발생 시에는 재난방송을 듣지 못해 위험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설비 노후화로 수신 불량 많아, 일반 터널은 더 열악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라디오 재방송 설비를 갖춘 터널이라도 제대로 라디오를 들을 수 없는 곳이 많다. 방송통신위원회의 2019년 ‘재난방송 터널 내 수신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고속도로 터널에서 국가재난 주관방송인 KBS FM라디오의 72.6%, DMB의 64.3%가 수신이 불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철의 라디오 수신 불량률은 KBS FM은 43.7%, DMB는 49.5%로 터널 내 방송 상태가 더 고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통위는 2015년부터 2년마다 전국의 도로·터널, 지하철 대합실 등의 재난방송 수신 상태를 조사하고 있다. 방통위는 터널 내 라디오 수신이 불량한 가장 큰 요인으로 라디오와 DMB 중계시설 노후화와 중계설비 설치 부족을 들었다.

일반 도로에 설치된 터널의 라디오 수신 상황도 마찬가지다. 강원도의 경우 일반도로 터널 398곳 가운데 300곳(75.3%)에서 재난방송을 들을 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철도가 다니는 터널 상황은 더 열악하다. 2020년을 기준으로 경춘선, 영동선, 동해남부선, 동해선 등 강원 도내 철도 터널 110개소 중 FM라디오 재난방송 수신이 가능한 곳은 경춘선 단 1개소에 불과했다.

 

◆터널 사고 사망률 2배 높아… 수신 상태 개선해야

터널 내 재난 발생 상황에 대비해 재난방송 매체의 수신 상태를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지상 도로와 달리 터널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생명과 안전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터널은 모두 2682개다. 2010년 1382개와 비교하면 거의 2배가량 늘었다. 차량 정체 구간을 해소하고 국토 균형개발을 위해 해마다 새로운 도로와 철도가 신설되기 때문에 터널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같은 기간 터널 연장 길이는 975㎞에서 2077㎞로 113% 늘었다.

터널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 사망률은 일반 교통사고보다 2배 더 높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5∼2019년) 터널 안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3452건이다. 연평균 690건의 터널 내 교통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터널 내 교통사고에 따른 사망자는 일반 교통사고에 비해 많다. 연평균 교통사고 치사율(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은 터널이 3.6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1.8명)보다 2배 높다.

위험요인은 늘고 있지만 재난이나 안전사고 시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고속도로에 설치된 1090개 터널(상·하행선 포함) 중 1002곳의 터널에서 화재 발생 시 골든타임인 7분 이내에 소방대가 도착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터널의 화재 사고 발생 시 소방대의 평균 도착 시간은 12.5분인 것으로 조사됐다. 터널 내 재난방송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는 이유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터널 내에서 재난 상황이 발생할 때 방송 수신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고 보다 철저하게 재난방송 매체의 수신 상태를 관리하는 한편 골든타임 확보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3일 경기 성남시 내곡터널에서 차량 화물차 화재가 발생해 시커먼 연기가 나는 모습. 성남도시개발공사 제공

◆화재 발생 땐 반대방향으로 연결된 피난로로 대피를

 

터널 사고는 유독가스와 연기, 열기 등이 외부로 쉽게 배출되지 않아 2차 피해 발생률이 높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신속한 초기 대응과 대피요령을 미리 익혀 두는 게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한국도로공사는 터널 사고로 차량 운행이 불가능하면 비상등을 켜고 차량을 비상 주차대나 갓길 쪽으로 주차한 후 시동을 끄고 차 키를 꽂아둔 채 하차해야 한다고 11일 밝혔다.

 

터널 내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비상벨을 누르고 휴대전화나 비상전화로 119신고를 한 후 주변 소화기나 소화전을 이용해 초기진화 작업을 한다. 현재 터널에 설치된 비상전화는 관제실과 소방대 등 관련 기관과 핫라인으로 연결돼 있다.

 

상황이 어려울 때는 가까운 출입구로 빠르게 대피해야 한다. 만약 화재가 커져 시야 확보가 어렵고 통행이 어려운 경우에는 연기 반대 방향으로 자세를 낮추고 터널 밖으로 움직이는 게 좋다.

 

만약 1000m 이상 긴 터널을 지날 때 화재가 발생하면 무작정 터널 밖을 향해 탈출을 시도하지 말고 250∼300m 간격으로 반대방향 터널로 이어진 피난 연결통로로 화재 현장을 벗어나면 된다.

 

소방 관계자가 겨울철 터널 사고에 대비해 훈련하고 있다. 익산소방서 제공

화재 현장으로 진입하는 후속 차량의 대처도 피해를 줄이는 데 중요하다. 터널은 보통 일방통행인 데다 터널 안에서 화재 발생 사실을 모르는 차량이 계속 진입하기 때문에 앞차에 불이 나면 후진이나 유턴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화재를 목격하면 바로 신고하고, 1000m 이상 긴 터널이면 반대편 터널로 이어진 연결통로를 이용해 차를 돌려야 한다.

 

터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운전자는 안전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터널 내로 진입하는 순간 일시적으로 차량 간 거리 감지와 속도 반응이 저하될 수 있음으로 계기판을 확인하며 규정 속도와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터널 진입 전에 선글라스를 벗어 시야를 확보하는 것도 잊지 말자. 터널 진입 시에는 전조등을 켜고 주행속도는 10∼20% 감속해 운전하는 게 좋다.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앞지르기와 전방 사고 시 무리한 진입을 피해야 한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터널은 대피 장소가 제한적이고 뒤따르는 차량의 운전자들이 사고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터널 내 사고나 화재는 도로를 주행하는 운전자에게 언제나 닥칠 수 있는 위급 상황이므로 대처 요령을 알아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안동=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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