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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서, 브런치와 즐기는 선율… 작지만 ‘큰 울림’ [이슈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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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20 11:00:00 수정 : 2022-02-20 09: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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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보석’ 클래식 무대들

‘치과 속 콘서트홀’ 광명 티스 아트홀
명품 피아노 갖춰… 40명 입장 가능
연주자에 무대 경험… 자선음악회도

‘중세 유럽 성’ 같은 강남 라움아트센터
조수미 등 무대… 11년간 220회 공연
2022년은 마티네 콘서트 총 11회 개최

‘사회공헌 모범’ 성남 티엘아이아트센터
지역기업, 주민 문예향유 위해 건립
젊고 실력 있는 음악가 발굴·공연도
피아니스트 이동하의 티스아트홀 개관 연주회 리허설 모습.

치과대 졸업 후 ‘페이닥터’로 10여년을 일한 김예진씨는 두 가지 꿈을 이뤘다. 경기도 광명시에 자신의 치과를 개원하면서 작지만 알찬 콘서트홀까지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13일은 바로 그 ‘티스 아트홀’의 개관연주회. 김씨가 큰마음 먹고 마련한 스타인웨이 피아노 앞에 2021 프라하의 봄 국제음악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한 피아니스트 이동하가 앉아 바흐의 ‘파르티타 제1번, BWV 825’에서 시작해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으로 끝나는 풍성한 선율을 선사했다.

클래식 무대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나 롯데콘서트홀만이 아니다. ‘티스 아트홀’처럼 작지만 의미 있는 공연장도 여럿 있다. ‘라움아트센터’는 10여 년 전부터 강남 한복판에서 클래식 살롱문화를 일궈오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선 ‘티엘아이아트센터’가 지역과 밀착한 정통 클래식 연주장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치과 속 콘서트홀

“개원하면서 콘서트홀까지 만드느라 비용이 두 배 이상 들었어요. 그런데 그 돈을 안 썼으면 이만 한 행복을 얻을까 싶습니다. 저는 여기서 평생 일할 텐데 제가 얻을 행복과 여기 오시는 분들이 누릴 가치를 생각하면 아깝지 않아요.”

“어찌하다 치과를 개원하면서 콘서트홀까지 만들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김예진 티스아트치과의원장은 “바쁘게 사느라 잊었던 꿈을 다시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주를 전공하고 싶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언젠가는 내 치과를 만들어야지’ 하던 꿈을 실현할 때가 되니 잊고 있던 피아노가 다시 생각나서 연주장까지 만들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치과를 만들기 위해 계약한 60평 공간에는 환자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유닛체어’를 최대한 설치하는 대신 그랜드 피아노 등이 놓일 무대를 만들고 연주자용 등·퇴장로와 출입구까지 따로 마련했다. “피아노를 놓으면 옆에서 첼로랑 바이올린도 연주하면서 피아노 삼중주도 할 수 있고, 불우이웃돕기 음악회를 열어볼 수도 있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덕분에 인테리어 비용도 곱절 가까이 늘어났지만 가장 고심한 건 피아노 고르기였다. 어릴 때 우연히 접한 기억이 늘 남아있던 명품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꼭 두고 싶었다. 거액인 만큼 좋은 중고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마음에 드는 피아노를 찾는 데 실패했다. 결국 스타인웨이 매장에 상담하러 갔다가 마침 새로 들여오는 A형 모델 2대 중 어느 피아니스트가 예약하고 남은 한 대를 1억6600만원에 계약하게 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스타인웨이 건반을 누르면서 겪은 느낌을 중고에선 못 찾겠더라고요. 그러다 스타인웨이 신품까지 사게 된 거죠. 무대를 만들고 피아노를 고르는 과정이 힘들 수도 있었지만 제게는 너무 신나고 즐거운 과정이었습니다.”

어렵게 만든 무대는 앞으로 자선음악회 등 다양한 노력으로 채울 예정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만 아니면 꽉 채워서 관객 40여명에게 무대를 선보일 수 있는 김 원장은 “티스아트홀은 열린 공간으로서 무대 경험이 필요한 피아니스트 등 여러 연주자에게 좋은 기회를 선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라움아트센터는 10여 년 전부터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클래식 살롱문화를 일궈오고 있다. 사진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소프라노 조수미가 라움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마티네 콘서트와 디너 콘서트 명당

서울 강남 한복판을 지나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라움아트센터는 설계 의도대로 길가에서 보면 성벽을 연상시키는 외관을 갖고 있다. 내부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들여왔다는 석재로 한껏 치장하고 샹들리에 등으로 꾸며진 내관은 중세 유럽의 성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으로 이어지는 연건평 1만평에 달하는 내부는 우아하고 아름답다. 아직 많은 이에겐 생소한 이곳은 국내 최초의 ‘소셜베뉴’를 표방하는 공간.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 특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성악가 조수미가 사랑하고 피아니스트 손열음 등이 무대에 선 콘서트홀을 품고 있다. 최근 11년 동안 220회 이상 예술 공연이 열려 3만5000여명이 감상했을 정도. 지난 연말에는 피아졸라 100주년 퀸텟 내한공연이 열려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가장 아름다운 무대는 4층 체임버홀이다. 길쭉한 회랑은 유럽 오래된 성당을 연상시킨다. 무대 쪽은 자연 채광으로 하늘에서 빛이 쏟아진다. 앤티크 같은 나무 의자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 느낌은 국내 다른 공연장에선 가질 수 없는 경험이다. 또 왕실 연회장을 연상시키는 3층 갤러리 홀이나 가장 큰 2층 마제스틱 볼룸 역시 분위기에선 빠질 수 없는 라움아트센터의 자랑이다. 이 같은 실내 공간과 성벽에 둘러싸인 정원을 연상시키는 가든을 활용해 라움아트센터는 ‘즐기는 클래식’ 문화를 만들고 있다. 해설이 있는 음악과 브런치로 구성된 마티네 콘서트, 그리고 공연 후 아티스트와 관객이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는 디너 콘서트로 단골 관객층을 형성하며 우리 사회 소셜 베뉴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중이다.

라움아트센터의 올해 마티네 콘서트는 주제별로 총 11회 열릴 예정이다. 첫 순서는 추억의 영화 속 클래식 명곡들과 그 숨은 의미를 되짚어보는 ‘시네마 클래식’이 실내악(2월 22일)과 솔로(4월 26일)로 나눠 관객과 만난다. 김종윤(피아노), 이희명(바이올린), 홍윤호(비올라), 박건우(첼로)로 구성된 앙상블 프로젝트와 바이올리니스트 박규민이 영화 속 실내악곡을, 피아니스트 송영민과 소프라노 김예은이 영화에 삽입된 피아노 솔로곡과 오페라를 들려줄 예정이다. 3월 ‘시네마 재즈’(3월 29일)에서는 독창적인 편곡으로 클래식과 재즈의 경계를 뛰어넘는 그룹 올 댓 클래즈가 조지 거슈윈, 클로드 볼링 등 영화 속 재즈 음악을 연주한다.

‘작은 공간, 큰 울림’의 티엘아이아트센터 콘서트홀.

◆‘작은 공간, 큰 울림’

경기도 성남시 야탑역 인근에 자리 잡은 티엘아이아트센터는 ‘지역 주민에게 양질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한다’는 쉬우나 이루기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실천 중인 공연장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어려운 환경인데도 지난해 총 80여회 공연을 진행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사회공헌) 모범사례’로 선정되어 2021년 예술경영대상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을 정도다. 재벌이나 함 직한 문화사업인데 LCD화면을 만드는 데 쓰이는 핵심 반도체를 설계하는 IT기업 티엘아이가 사회공헌을 위해 성남 사옥 2층에 250석 규모로 2013년 건립했다.

‘작은 공간, 큰 울림’이라는 자랑처럼 콘서트홀 핵심인 잔향시간은 1.2초로 설계됐다. 반사·흡음 기능의 전동 커튼과 무대의 후벽 옵션 선택에 따라 팝, 재즈, 연극, 뮤지컬 등의 공연도 수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피아노가 비치된 연습실이 12개나 된다. 건물로부터 진동이 전달되지 않는 특수 방진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티엘아이아트센터의 가치는 이런 콘서트홀을 활발하게 가동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티엘아이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특히 미래 한국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어 나갈 젊고 실력 있는 음악가들을 발굴하고 성장을 돕는 기획이 다양하다.

올해는 6월 김규연 피아노 독주회를 시작으로 한국을 빛낸 최정상 음악가의 무대 ‘티엘아이 아티스트 시리즈’, 그리고 5월에 열리는 한재민 첼로 리사이틀 등 신선함과 원숙함이 공존하는 ‘영 비르투오조 시리즈’, ‘보컬 시리즈’와 ‘티엘아이 실내악 축제’ 등이 열릴 예정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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