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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년 남성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버스에 탔다. 현금을 내고 승차한 탓에 카드를 찍으면 나오는 마스크를 써 달란 안내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을 지나쳐 그는 당당히 자리에 앉았다. 한 정거장을 채 못 가 “마스크 써주세요”란 말이 들렸다. 버스 기사가 뒤늦게 그를 발견한 것이다. ‘분명 실랑이가 벌어지겠지.’ 앞으로 펼쳐질 일을 상상하며 출근길부터 피곤해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고, 마스크를 까먹었네. 내려야겠네”라며 아예 뒷문 앞에 서 있기까지 했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지면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집밖에 나올 수 있다 보니 헷갈린 모양이었다. 이에 버스 기사가 다음 정류장에 세워주겠다고 하면서 상황은 생각보다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유지혜 경제부 기자

이때 한 여성 승객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는 고맙다며 바로 마스크를 썼다. 남성은 마스크를 준 승객이 하차할 때도 연신 감사의 말을 건넸다. ‘노 마스크’ 난동이 펼쳐질 것이란 섣부른 예상과 달리 마음이 따뜻해지기까지 한 출근길이었다.

여기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레베카 솔닛이 이야기한 ‘재난 유토피아’가 떠올랐다. 솔닛은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많은 사람이 재난 속에서 이타심을 발휘해 연대의식을 느끼고 서로 돕는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재난’ 하면 무질서하고 폐허가 된 디스토피아를 떠올리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유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솔닛은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재난 유토피아를 목격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들이 뉴올리언스로 달려와 고립된 수천명을 구했고, 서로 물과 음식 등 생필품을 나눴다. 이로부터 99년 전인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구조 활동과 공동체 형성도 재난 유토피아의 한 예다.

우리도 재난 유토피아를 경험해봤다. 2016년 제주도에 폭설이 내려 수많은 사람이 공항에 발이 묶인 적이 있다. 당시 제주도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씻을 곳을 제공해주고, 잘 곳을 내어줬다. ‘검은 재앙’이라고 불렸던 충남 태안 기름 유출 사고도 마찬가지다. 2007년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과 홍콩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해상에서 충돌하면서 기름 1만2547㎘가 뒤덮었던 태안은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제 모습을 되찾았다. 다녀간 자원봉사자 수만 123만명이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이어졌던 수많은 사람의 기부와 의료진의 헌신 역시 하나의 재난 유토피아였다. 그리고 그날의 ‘마스크 품앗이’에서도 소소한 재난 유토피아의 모습을 봤다. 앞으로도 ‘노 마스크’ 난동보다 이런 훈훈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까. 그날 이후 가방 속에 모르는 사람에게도 선뜻 내어줄 수 있는 마스크 한 장씩을 챙겨두고 있다. 재난을 유토피아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유지혜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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