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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여성] 우람한 황소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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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8-20 21:52:23 수정 : 2009-08-20 21: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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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모로 - 파시파에와 황소
그리스 최남단에 자리 잡은 섬, 크레타. 유럽문명의 모태인 에게문명과 미노아문명의 발상지이다. 제우스가 에우로페와의 사이에서 낳은 미노스가 통치한 왕국으로도 잘 알려졌다.

미노스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를 지지하고 축하하고자 숙부(叔父)인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잘생긴 황소 한 마리를 보내주었다. 지금도 크레타 섬 곳곳에 그려진 황소 상, 미노타우로스 신화 등은 이러한 토테미즘(Totemism·동물숭배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황소가 어찌나 늠름하고 아름다웠던지, 미노스는 황소를 제물로 바쳐 포세이돈의 위용을 높여주기엔 아깝다고 여겼다. 미노스의 명령에 따라 황소는 바꿔치기되었고, 이에 노여움을 느낀 포세이돈은 미노스의 부인 파시파에 왕비가 그 황소에게 욕정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파시파에는 황소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낮엔 잘생긴 황소의 얼굴과 빛나는 가죽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밤엔 황소의 우람한 근육과 거친 콧김에 설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고민 끝에, 파시파에는 고대의 천재과학자 다이달로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이달로스는 “과학은 언제나 중립적이다, 발명품에 대한 책임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람이 아닌, 사용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이 텅 빈 암소모형을 나무로 만들어내고 황소를 흥분시킬 수 있는 각종 방법도 일러주며 파시파에를 도왔다. 그녀는 모형 속에 들어가 황소를 유혹했고, 마침내 사랑을 나누었다. 그 결과로 태어난 ‘미노타우로스(미노스의 황소)’는 그녀의 외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머리는 황소, 몸통은 인간, 거기에 인간을 잡아먹는 흉포한 식성은 평온했던 크레타섬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미노타우로스는 괴물이지만 엄연히 크레타의 왕자였으므로 왕은 고심 끝에 다이달로스에게 시작한 일을 끝맺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렇게 해서 다이달로스의 손에 의해 미궁 라비린토스(Labyrinthos)가 건설되었다. 괴물을 가두는 덴 성공했지만 천재과학자도 괴물의 식인 식성을 없앨 비책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미노스는 속국이었던 아테네의 소년소녀를 매년 공물로 요구했고, 그들은 굶주린 괴물의 배 속으로 사라져갔다. 3차 공양에 참가한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원정대를 이끌고 크레타에 도착, 미노스의 딸인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미노타우로스를 죽일 때까지 그렇게 인신공양의 비극은 계속되었다.

전설과 신화 속에서 신이 내린 형벌이나 저주로만 간주되던 반인반수 생명체의 이야기가 현대의 다이달로스들의 손에 의해 현실화될 모양이다. 영국 뉴캐슬 대학에서는 지난해 인간 DNA를 동물의 난자에 삽입해 이종배아를 만드는 실험을 했고,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연방정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지원 금지규정도 풀렸다. 우리나라 역시 인간체세포복제를 통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승인됐다는 뉴스가 한 차례 신문지상을 휩쓸고 지나갔다. 희귀난치병 치료의 대안이자 노화방지 및 생명연장의 열쇠가 되리란 예측에 들뜨는 한편, 신의 영역에 도전한 대가로 생태계 교란과 예기치 못한 부작용 발생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파시파에와 미노타우로스, 다이달로스의 이야기 속에 현 세대의 고민에 대한 해답이 농축된 게 아닐까 반문해본다. 선배과학자 다이달로스가 말했듯, 과학적 발견의 가치는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좌우된다.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윤리와 상식의 규제를 벗어나 인간 욕망의 도구가 되었을 때, 발견은 재앙이 되고, 미노타우로스 같은 괴물을 낳을지도 모른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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