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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화첩기행③거대한 산마저도 삶의 언덕이 되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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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2-13 15:03:00 수정 : 2007-02-13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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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국경에서 관광객들을 당황케 만드는 것이 있다. 마사이족 전통의상을 입은 한 무리가 저마다 목걸이와 팔찌 등 전통 장신구들을 손에 들고 사 달라며 필사적으로 돌진하는 모습이다. 안 산다며 손을 내저어도 막무가내로 에워싸며 달려드니 영락없이 우리에 갇힌 동물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초원에서 사자몰이 당하는 형국이다. 뿌리치고 막 ‘탈출’을 시도하는데 한 마사이 사내가 다가와 홍명보와 차두리를 잘 안다며 “한국 돈도 괜찮다”며 말을 걸어 온다. 그는 한국 돈의 단위까지 정확히 발음했다.
그래도 관심을 안 보이자, 그는 대뜸 “우리는 친구”라며 팔찌 하나를 선물이라며 손에 안겨줬다. 막 자리를 떠나려 하자, 그가 다가와 친구 사이인데 돈 좀 줄 수 없냐고 매달린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팔찌 값에 해당하는 돈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국경을 넘나드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나름의 계산된 상술이었던 셈이다. 관광객의 혼을 빼는 실력이 마사이 전사들이 초원에서 사자를 다루는 솜씨다.
어쨌든 한국의 축구선수 이름을 거론하며 알은 체하는 모양새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위성방송 등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등 축구경기를 즐겨 시청하는 이들에게 그만큼의 정보는 아무것도 아니다.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 김종우 작가가 저만치서 형형색색의 장신구와 의상을 걸친 그들을 향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한마디 했다. “우리가 패션을 입는다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미술’을 입는다.”

# 신맛이 일품인 커피
저녁 무렵에서야 킬리만자로의 베이스캠프인 모시(Moshi)에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창문을 여니 바로 저만치에 흰 눈을 뒤집어쓴 킬리만자로가 굽어보고 있다. 오는 도중에 먼곳에서 바라본 킬리만자로는 구름에 숨어 얼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턱밑까지 찾아온 정성을 생각해서일까. 그래도 해질녘 살짝 얼굴을 드러내고 수줍은 신부처럼 이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이 깔리자 흐릿한 자태만이 어렴풋하게 다가온다. 마치 본질의 세계가 스스로를 드러내듯이.
◇600년 된 바오밥나무(왼쪽), 권순익의 ‘해와 달을 훔쳐 달아나는 도둑’. 킬리만자로 산자락 숙소에서 새벽녘에 잠을 깨 창문밖을 보니 별 하나만 외로이 빛나고 있었다. 작가는 이때의 영감을 캔버스에 옮겼다.

다음날 아침 숙소 옥상에 오르니 붉은 아침 햇살을 받은 킬리만자로는 흰 모자를 쓴 홍조 띤 아가씨 얼굴이다. 킬리만자로 초원엔 커피농장들이 자리하고 있다. 킬리만자로의 눈과 바람이 신맛 강한 킬리만자로 커피를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산자락 커피숍에서 킬리만자로의 오리지널 커피 한 잔의 향과 맛에 취해본다. 아프리카에서 그윽한 커피 한 잔이라니, 서울의 그리운 이들이 떠오른다.

# 어린 왕자의 바오밥나무를 보다
산자락을 돌아 오르는 길 가에 당산나무 같은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현지인에게 물으니 600년 된 바오밥나무라 했다.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 “내가 아프리카 주인”이라며 소리 없이 시위하고 있는 폼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로 그 바오밥나무다. 어릴 적에 읽었던 어린왕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땐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폭발해버릴 거라는 우려가 실감이 안났다. 이제야 아프리카 초원에서 바오밥나무를 보니 의문이 풀렸다. 바오밥나무 아래에는 그 어는 나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만큼 생명력이 왕성하다.
누군가 말했듯이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밥나무는 무한대로 커지기만 하는 현대인의 탐욕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바오밥나무로 다가가자 인근 주민이 팔뚝만한 바오밥나무 열매를 통째로 들고 나와 사라고 한다. 마른 열매 껍데기를 여니 그 속은 하얀 밀가루를 바른 엿을 가지런히 잘라 놓은 모양이다. 하나을 떼어내 맛을 보니 시큼한 맛이 난다.

#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등산로 입구에 다다르니 포터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포터 생활로 시작해 30여년간 킬리만자로에 오른 가이드 제베다 킬레오(56)씨는 얼굴 가득 웃음이다. 6시간 동행의 대가는 1만원도 채 안 되지만 “산에 오를 수 있어 행복”하단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포터는 그 절반 수준이라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우리네 속좁은 생각이 아닐까. 산이 돈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보다 큰 것을 그들에게 베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진정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오히려 반문하게 만든다. 몇푼의 팁을 보탰지만 괜시리 손만 부끄러워졌다.
가이드는 킬리만자로의 어원부터 설명했다. ‘킬리만’(언덕)과 ‘자로’(멀리서 볼 수 있는)의 합성어로 멀리서 볼 수 있는 언덕이란 뜻이다. 왜 하필 산이 아니고 언덕일까. 언덕은 우리 삶 속의 공간이 아닌가. 산은 저만치 있는 타자의 개념에 가깝다. 큰 산을 삶의 언덕으로 바라본 아프리카인의 스케일이 놀랍다.
킬리만자로는 눈 덮인 산으로 높이가 5895m에 이르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세계적인 명산들과 달리 평원에 홀로 솟아 있어 산 맛이 각별하다. 오르는 길엔 원시림이 무성하다. 고산병에 실려 내려오는 이들도 연방 목격된다. 3시간 만에 3720m의 호롬보 산장에 올랐다. 30분을 더 오르니 산 중턱의 분화구가 나타난다.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이다. 차가운 바람이 흰 구름을 실어와 분화구를 치장한다. 킬리만자로 정상까지 오르려면 적어도 5일 일정을 잡아야 하니 아쉽지만 후일을 기약했다.
헤밍웨이 원작의 영화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주인공은 사냥 여행을 나섰다가 킬리만자로 기슭에서 패혈증이 원인이 되어 죽음의 고비에 이른다. 구원을 기대할 수 없는 빈사 상태에서 그는 지난날의 생활을 회상하게 된다. 죽음 직전에 주마등처럼 스친다는 지난일들이 아마도 이런 것일 게다. 삶의 극한에서 진정한 자아를 본다 하지 않던가.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없음이 못내 아쉬웠다.
하산길에 권순익 작가가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불러젖힌다.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 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모시 시내 레스토랑에서 막걸리 같은 바나나술에 취기가 오른 두 작가는 술병 주둥아리를 마이크 삼아 연방 노래를 불러댄다. 즉석 노래방 콘서트가 펼쳐졌다. 킬리만자로 자락에 사는 차가족 처녀인 식당 아가씨의 히프도 율동이 된다.
산행길이 피곤했는지 숙소로 돌아온 두 작가는 곧바로 잠에 떨어졌다. 꿈 속 화폭에서나마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만날 것이다.
모시(탄자니아)=편완식 기자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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