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책방향 놓고 옥신각신
땜질 아닌 구조적 대응책 시급
가공용 확대 등 수요 창출 절실
처음엔 ‘괴식’쯤으로 여겼다. 꿀떡을 우유에 부어 먹다니…. 이른바 ‘꿀떡 시리얼(Ggultteok Cereal)’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색 레시피로 인기를 끈다는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그랬다.
이 레시피를 알려준 지인은 평소 버블티를 즐겨 먹는데 쫀득한 식감에 반했다고 했다. 궁금증에 퇴근하면서 사둔 꿀떡 한 팩을 아침 출근 전 우유와 곁들여 먹었다. 우유가 고소한 것이 예상 밖 별미였다. 지인이 알려준 팁대로 꿀떡을 가위로 살짝 잘라 우유가 잘 스며들게 했는데, 깨 고명이 우유에 섞여 달콤함을 더했다.
이 레시피는 해외 SNS에서 쇼트폼 콘텐츠에 담겨 먼저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드라마와 영화, 대중음악 등 한류를 통해 소개된 한식을 맛본 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창조한 K디저트라는 게 업계 전언이다. 네이버 데이터랩 분석을 보면 꿀떡 시리얼 관련 검색량은 지난달 초부터 집계되기 시작해 22일에는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선 꿀떡의 주재료인 쌀의 인기가 갈수록 떨어진다. 지난해 1인당 평균 소비량은 56.4㎏에 그쳤다. 전년(56.7㎏)보다 0.6% 감소했는데,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62년 이후 가장 적었다. 30여년 전인 1992년 소비량(112.9㎏)의 반토막 수준이다.
아침 결식률 상승과 대체식품의 소비 증가, 서구화된 식생활의 확산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쌀이 남아도니 풍년이면 농가의 가격 폭락 걱정이 더 커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해마다 빚어진다. 재배 면적이 전년 대비 1.5% 줄어든 올해도 햅쌀 생산량은 2021년 이후 최저 수준인 358만5000t으로 예상되나 소비가 빠르게 줄어드는 바람에 과잉 공급이 우려된다. 정부는 올해 햅쌀이 5만6000t 남을 것으로 예측하고, 이보다 14만4000t 많은 20만t을 수매해 시장에서 격리하는 방식으로 쌀값 하락을 방어하기로 했다. 별개로 공공비축미 36만t도 매입한다는 방침이다.
남아도는 쌀에 정치권에서는 볼썽사나운 장면이 재연되고 있다. 쌀 가격이 양곡수급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정하는 기준 이상으로 폭락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매입 등의 대책을 수립·시행하도록 규정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양곡법 개정안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단독 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국회 재표결 부결로 폐기’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법 개정안을 ‘쌀 의무매입제’로 규정하고, 시행 결과 수요량 이상의 쌀이 계속 생산돼 공급과잉이 심화되고, 쌀값의 지속적인 하락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한다. 나아가 쌀 매입비와 보관비 등에 과도한 재정이 지원돼 타 품목에 대한 지원 감소는 물론이고 청년농·스마트팜 등 미래 농업을 위한 투자 확대에도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쌀 대신 밀과 콩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재배 작물 농사로 전환을 어렵게 하는 등 장기적인 농업발전에도 악영향이 크다고 주장한다.
야당 주장대로 정책 실패에 따른 쌀의 구조적인 공급과잉을 재정으로 막아야 하는지 의문이 크다. 쌀 정책 실패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옥신각신할 게 아니라 소비를 늘려 구조적인 난제를 돌파할 타개책을 적극 모색해야 할 때다.
답은 이미 시장에 있다. 작년 사업체부문의 가공용 쌀 소비량은 2022년보다 18.2% 증가한 81만7122t으로 2011년 통계청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푸드테크를 기반으로 그린바이오와 팜테크를 쌀에 적용하면 소비자 맞춤 간편식·대체식품과 같은 새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실제로 냉동김밥과 즉석밥, 떡볶이 등 쌀 가공식품 수출액은 올해 들어 10월까지 2억5000만달러에 달해 이미 작년 한 해 실적을 넘어섰다.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시즌2가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떡 지옥 미션’이나 쌀 요리 대결이 등장해 천재 요리사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레시피가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개인적으론 초콜릿 우유 꿀떡 시리얼은 추천하지 않겠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