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경기 부진 등 세계경제 ‘불확실성’이 변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말 ‘2010년 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2010년 하반기쯤 되면 서민들도 (경기회복 기운을) 체감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경기가 나아지면서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미미하게나마 온기를 느끼는 것 같지만 서민들이 온기를 느끼기에는 아직 이른 것 같다”며 “정부는 경기를 회복시키고자 모든 노력을 다하면서도 서민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데 정책의 중심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우리 경제는 지난해의 빠른 회복세가 이어지면서 수출과 설비투자, 내수 등 전반적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차량 전용 선적부두와 야적장에 미국 등지로 수출될 차량들이 가득차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
즉 ‘충분한 가능성을 본 해’였던 셈이다. 이 같은 호평 속에 정부는 올해 5% 성장률을 제시하면서 수출과 설비투자, 내수에서 강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수렁에서 벗어나는 경제=우리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자 출구전략 논의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발 경제위기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2008년 말과 지난해 초, 경제전문가 누구도 우리 경제의 전망을 밝게 본 사람은 없었다. ‘9월 대란’, ‘3월 붕괴’ 등의 시나리오가 거론됐으며, “환란 때의 고통과는 비교도 안 될 엄청난 재앙이 몰아쳐 올 것”이라는 전망을 제기하는 경제전문가도 있었다.
하지만 대란이나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 경제는 지난해 1분기에 저점을 찍은 뒤 상승세로 돌아서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등 경기개선 흐름이 지속돼 지난해 연간 0.2% 플러스 성장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민간소비는 자동차 등 내구재 중심으로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설비투자는 아직 위기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반도체 장비를 중심으로 좋아지고 있다.
생산자 제품 재고는 재고 조정이 마무리되면서 지난해 6월부터 재고축적 단계에 진입했다. 고용은 정부의 일자리 대책으로, 지난해 6월 이후 소폭 증가세로 반전됐다. 수출은 선박 수출 증가, 중국 경제 호조, 환율 상승으로 상대적인 호조를 보이고 있다. 경상수지는 대규모 흑자, 서비스수지는 여행수지를 중심으로 적자폭 축소, 소득수지는 전년 수준의 흑자 유지 등으로 지난해 경상수지가 420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금융시장의 안정세도 고무적이다. 지난해 11월 말 두바이의 채무지급유예(모라토리엄) 사태가 주식시장을 잠시 뒤흔든 것을 제외하면 주가와 환율 모두 지속적인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낙관론자들은 올해 코스피가 2000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부문별로는 올해 민간소비는 실질 구매력 증가에 따라 연간 4%대 초반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투자여건 개선과 함께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하면서 지난해 급감했던 설비투자가 올해에는 11%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고용은 경기 개선에 따른 민간부문 고용 창출과 정부의 일자리 사업 효과로 20만명 내외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수출과 수입도 올해 각각 13%와 21%가량 증가할 것으로 평가됐다.
기관에 따라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2∼5.5%로 예상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5.5%로 가장 높게 보고 있으며, 국제기구나 민간기관에서는 4.5% 수준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우리 경제에 대해 낙관론을 펴고 있다. 올해 4.5%의 성장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IMF는 “한국 경제가 매우 인상적으로 회복하고 있다”며 “정책 당국의 포괄적인 재정, 통화, 금융 대응은 현재 점진적으로 확산되는 민간수요 주도의 경기 회복을 이끌어내는 발판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4.4%, LG경제연구원은 4.6%, 현대경제연구원은 4.5%, 삼성경제연구소는 4.3%, 한국경제연구원은 3.2%를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치로 제시하고 있다.
◆세계경제 불확실성 상존=문제는 세계경제가 올해 플러스 성장이 예상되지만 성장 속도가 완만하고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선진국은 금융시장 불안이 서서히 완화되고 세계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성장세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확장적 재정지출 효과가 줄어들고 고용 부진과 가계부채 조정으로 소비 회복이 지연돼 아직 경기회복 기반이 미흡한 상황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흥국의 경우 수출이 과거에 비해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겠지만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으로 내수가 증가하면서 선진국에 비해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금융시장 불안 재연 가능성 등 하방위험 요인이 여전히 많은 상황이다. 재정수지 악화로 선진국들의 추가지출 여력이 부족하고 국채 발행에 따른 금리상승으로 소비·투자 개선이 지연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IMF도 우리 경제가 안정세 속에 올해 불확실성도 상당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의 교역대상인 선진국의 경기 부진이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IMF는 우리 정부가 경기 정상화를 의미하는 출구전략을 쓰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당부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 보고서에서 “내수와 수출의 개선으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내년 우리 경제 전망은 불확실하다”면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출구전략을 예상보다 빨리 실시하면 세계 경제의 회복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수출 성장세가 식으면서 수출이 경기 회복을 이끈 우리 경제의 상승세가 꺾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환율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없다. 만약 원고·고금리·고유가 등 ‘3고 현상’이 재현된다면 내수가 급속히 위축될 수 있다. 시중 단기자금이 부동산 시장 등 자산 시장으로 쏠릴 우려도 여전히 불안 요소로 남아 있다. 어느 해보다 상대적으로 밝은 전망 속에 새해를 시작한 우리 경제가 2010년에도 순항할지 국내외의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이상혁 기자 nex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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