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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68> 극장

입력 : 2013-01-29 21:43:37 수정 : 2013-01-29 21: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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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에 밀린 동네극장… 추억도 동시상영 되나요? #극장, 현실 밖의 현실

얼마 전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을 봤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이야기는 극 속의 극 형식인데, 대입 시험을 막 치른 고등학생인 남자가 우연히 길을 걷다가 중학교 때의 첫사랑을 만난다. 그녀는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 둘의 이야기가 느리게 흘러간다. 그들은 술을 마시며 함께 하루를 보내고 별다른 동기나 사건도 없이 동반자살을 꿈꾸지만 허무하게 실패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앞의 이야기가 영화 속의 이야기임이 드러나며, 앞의 이야기에서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여배우와 그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이 자신을 모델로 만든 것이라고 우기는 찌질한 영화감독 지망생 남자가 나온다. 여배우를 매개로, 두 개의 이야기는 묘하게 접합이 된다. 현실 바로 앞에 있는 가짜 현실에서 추레하고 허접한 진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단관극장이었던 서대문의 옛 화양극장. 호텔 건축이 추진되면서 2012년 문을 닫았다. 화양극장은 1964년 문을 연 이후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 홍콩영화 개봉관으로 이름을 날리다 1990년대 이후 재개봉관과 시사회 전용관, 노인전용극장 등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우리는 극장에 간다. 실은 남루한 현실과는 다른 가상의 현실을 보고자 극장에 가는 것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모여 보면서 같은 이야기를 각자 개인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무척 창조적인 행위이다. 또한 영화를 보는 행위는 현실에서 잠시 떠나 있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현실의 시간을 계속 재어보기도 하지만, 그건 그나마 현실에서 머물겠다는 아주 약한 의지일 뿐, 사람들은 영화가 제공하는 너른 공간과 또 다른 시간 안에 편안히 머무른다. 우리는 그 공간 안에서 꿈을 꾸고 꿈을 보는 것이다. 컴컴한 극장의 공간은 그런 개인화된 공간이다. 그 개인화된 공간에서 우리는 기뻐하고 슬퍼하고 좌절하고 희망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얼마간의 돈을 극장 매표소에 디밀고, 매표소에서 혀처럼 쏙 나오는 극장표를 받아들고 부푼 가슴을 안고 어둡고 컴컴한 극장 안으로 들어가 깊은 숨을 내쉬며 눈을 크게 뜨고 영화를 기다린다.

결국 ‘극장전’은 극장을 나온 주인공이 “이제 생각을 좀 하자”고 중얼거리며 끝난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떨어져 있었던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마치 빠르게 도는 회전 놀이기구에서 내려와 비틀거리며 다시 지구의 중심으로 향하는 중력을 되찾듯이,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화양극장에서 2008년 재개봉되었던 ‘영웅본색2’.
자료=신동식 제공.
내가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갔었던 유치원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을지로3가에 있었다. 집 앞을 나서 큰 길 건너 퇴계로 쪽으로 가면 대한극장·명보극장·스카라극장 등이, 종로 쪽으로 넘어가면 단성사·피카디리 극장 등의 개봉관이 즐비했다. 그 극장들은 건물도 멋있었지만 건물의 외벽을 거의 다 덮고 있는, 영화의 내용을 축약해서 그린 커다랗고 자극적인 그림들이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극장에 대한 나의 기억은 명보극장에서 시작된다. 기억에 남는 영화 중 가장 오래된 영화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이었던가, 폭우가 쏟아지는 컴컴한 길에서 한복을 입은 여인이 비에 흠뻑 젖은 채 슬프게 울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주인공은 아마 문희라는 내가 본 여자 중에서 가장 예쁜 얼굴을 가진 영화배우였을 것이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간 명보극장 앞에 있는 다방에는 영화 속의 문희처럼 머리를 곱게 틀어 올린 마담이 있었다. 그 마담은 비현실적으로 뽀얀 얼굴 위에 그림 같은 미소를 피워 올리며 컵에 든 우유를 데우고 설탕을 타서 휘휘 저어 주었다. 미끈미끈하며 따끈한 그 달콤한 맛, 그리고 설탕이 녹아 끈적거리는 묘한 느낌이 영화에 대한 기억과 같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앞면에 다양한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아주 고급스러운 극장의 외관과 도통 현실적이지 않은 이상한 공간들…, 그리고 참 많은 영화를 보았었다.

#삼류극장 순례기

내가 나의 의지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였다. 우리나라의 영화 산업이 텔레비전의 보급과 군사정권하에서의 여러 가지 검열 등으로 침체기로 접어들었던 시기였다. 중학교 3학년 때 1년 동안 150여편의 영화를 봤다. 그것이 전부 극장에서 본 영화이다. 단순 계산으로는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극장에 간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동네에 널려 있는 동시상영 극장을 들락거려 그 수를 무척 많이 늘려서였다. 지금은 배급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는 극장들도 개봉관에서 시작해서 재개봉관을 거치고 재재개봉관을 거쳐 마지막 동시상영관까지 내려오는 데까지 여러 단계가 있었다. 그래서 아주 인기 있는 영화를 동네에서 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어떤 영화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오로지 한군데뿐인 개봉관에 가서 표를 사고 보아야 했다. 가끔 재미있다거나 화제가 되는 영화일 경우에는 극장 앞에서 시작한 줄이 인근 도로를 점령할 정도로 길어졌고, 그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암표상들이 희죽 웃으며 “표 있다”고 은밀한 거래를 제안하곤 했다. 줄을 서서 하염없이 기다리며 도대체 오늘 안에 그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갈등하는 중에 그 유혹은 떨치기 힘든 강렬함이 있었다.

그러나 중학생에게 그런 개봉관에 가서 영화를 볼 경제적 여유는 없었다. 단성사·피카디리·명보·국제·국도·스카라 등등 개봉관은 서울의 중심에 몰려 있었고, 그 무렵 내가 살던 수유리 인근에는 재개봉관인 대지극장, 재재개봉관인 세일극장, 그리고 동시상영관인 아폴로극장·천지극장·동광극장 등이 마치 한 가족처럼 오순도순 모여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행복하게 영화 속에 파묻혀 살 수 있었다. 주로 동네에 여기저기 널려 있던 이른바 ‘삼류극장’을 즐겨 이용했다. 그곳에서는 대단히 많은 장르의 영화들이 하루 종일 여러 편 상영되었다. 대부분은 두 편을 번갈아가며 상영하곤 했었는데 어떤 곳은 세 편을 상영하는 곳도 있었다.

그때 본 영화들은 당시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던 질 낮은 국산 영화부터 시작해서 명화로 분류되는 외화도 꽤 있었다. 그때 본 영화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프렌치 커넥션’, ‘스카라 무슈’, ‘시실리안’ 등이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훨씬 더 오래전에 개봉되었던 ‘피서지에서 생긴 일’, ‘젊은이의 양지’ 등도 볼 수 있었다.

개봉관과 재개봉관을 거치며 낡을 대로 낡은 필름에는 생채기가 많이 생겨, 화면에서는 비가 오듯이 많은 흠집이 보였고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그리고 몇 번씩 암전이 지속하곤 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가락을 오므려 입 안에 넣고 휘파람을 크게 불어댔다. 표면적으로는 화를 냈지만 내심 그 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올 때도 있었다. 환한 낮에 들어가서 컴컴한 밤에 나올 때의 무뎌진 감각으로 현실로 쉽게 돌아와 지지 않는 의식을 다시 되돌리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그렇게 동네 곳곳에서는 개봉된 시기가 제각각이었던 영화들이 즐비했고, 나는 그 영화들을 아주 싼값으로 봤다. 가끔 동네 가게에서 초대권을 얻기도 했다. 극장에서 일하는 우리 나이 또래의 소년들이나 조금 위 연배의 청년들이 얇은 모조지에 인쇄된 포스터를 옆구리에 끼고 풀 통을 들고 다니면서 전봇대나 혹은 구멍가게의 문에 붙이며 주고 간 표들이었다.

동네에 있는 영화관의 영화를 다 보면 조금 먼 동네로 원정을 다녔다. 혹은 사간동에 있는 프랑스문화원에 가서 아주 저렴한 금액을 주고 전설로 들었던 알랑 레네나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도 보았다. 그렇게 영화를 기갈이 든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최근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지하 3층에 문을 연 CGV 여의도점. 쇼핑센터에 세 들거나 지하로 숨어든 보이지 않는 극장을 찾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식당과 카페와 옷가게의 숲을 헤맨다.
#거리에서 사라진 극장

물론 요즘도 극장에 간다. 마치 거대한 문들의 집합체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거대한 문들이 나란히 입을 벌리고 있는 극장으로 간다. 멀티플렉스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는 영화들이 널려 있다. 빨랫줄에 형형색색의 빨래들을 널 듯이 엄청난 물량을 투입해선 만든 영화들, 돈으로 만들어서 돈을 벌어들이는 영화들이 널려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허겁지겁 영화를 씹지도 않고 먹어대는데 도대체 그곳에서는 아무런 개인적인 추억도 없다.

큰 홀로 들어가서 접시 하나를 든 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음식들을 주워 담는 것처럼, 그리고 그 음식들이란 것이 각각의 맛과 개성이 함몰된 채 어떤 맛도 아닌, 그저 많이 모아서 먹는다는 행위에 만족하고 속이 더부룩해질 때까지 먹어대는 뷔페음식처럼, 영화가 그렇게 우리에게 소비되고 있다.

대표적인 개봉관이었던 대한극장도, 단성사도 사라지고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단관극장은 서대문의 옛 화양극장이었다. 1964년 문을 연 이후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 홍콩영화 개봉관으로 이름을 날리다 1990년대 이후 재개봉관과 시사회 전용관, 노인전용극장 등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 결국 호텔 건축이 추진되면서 2012년 문을 닫았다. 이제 극장의 이름은 더 이상 명보극장·국제극장·허리우드극장 같은 고유의 이름이 아니라 메가박스 코엑스점, 여의도 CGV, 건대 롯데시네마 같은 대형 극장 프랜차이즈의 지점으로만 기억된다. 쇼핑센터에 세 들거나 지하로 숨어든 보이지 않는 극장을 찾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식당과 카페와 옷가게의 숲을 헤맨다.

CGV 여의도점의 상영관 입구. 우리는 거대한 문들의 집합체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거대한 문들이 나란히 입을 벌리고 있는 극장으로 간다.
한국 영화가 수렁에서 벗어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라고 한다. “한국영화는 안 돼!”라거나 “예전에 우리가 아시아 영화계를 제패하던 시절이 있었어” 하는 소리를 웅녀가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보다 훨씬 멀고 먼 옛날 이야기로 듣곤 했었는데, 어느덧 한국의 영화시장은 세계 10위이고 연간 영화 관객 수는 2억명에 육박한다.

그러나 한국의 영화시장은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대다수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영화나 혹은 영화의 상영 일수는 아주 제한적이어서,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영화인들의 자리를 자본이 쥐락펴락하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내가 기갈이 든 것처럼 영화를 보던 예전에 비하면 양질의 영화를 훨씬 좋은 환경에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온갖 영화를 한껏 내 마음대로 보던 시절은 아니게 된 것이다.

어떤 영화는 6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개봉이 되고, 어떤 영화는 스크린을 얻지 못해 구걸하다시피 사정해서 겨우 개봉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내리는 빈익빈 부익부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영화계에 대기업 계열사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영화가 더 이상 낭만을 좇는 예술이 아닌 돈을 넣어 돈을 무척 많이 벌어들이는 화수분으로 인식이 되어 투자가 몰리면서, 투자만큼의 이익을 남기기 위해 보다 조직적이고 잘 갖추어진 시스템을 도입하고, 철저히 상업적이거나 혹은 실패의 확률이 낮은 방향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그런 경향은 제작자가 영화를 만드는 데 깊숙이 개입하게 하고, 결국은 영화의 창의력이 약화하고 관객은 점점 선택의 폭의 제한을 받게 된다.

영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는 점점 이런 자본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생산되고 소비된다. 한때는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고 국가의 미래를 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그런 것일까. 그런 시스템에 의해 찍어내는 창작물이 과연 우리의 미래를 열어줄까.

우리 곁에 이제 동네는 없다. 구멍가게가 없어지고 철물점이 없어지고 책방이 없어지고 만화방이 없어졌다. 그리고 극장이 없어졌다. 문화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문화에 대한 욕구는 무척 높아졌는데 문화를 만드는 샘은 점점 말라가고 있다. 샘이 없는데 우리는 어디서 갈증을 해소할 것인가.

가온건축 공동대표·‘작은 집, 큰 생각’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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