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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11> 멕시코 툴룸

입력 : 2007-12-28 09:40:09 수정 : 2007-12-28 09:4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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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요리의 추억’
◇멕시코 툴룸 주변 카리브해는 눈부신 에메랄드 빛이다.
“이탈리아인이라고요?” “네” “만나서 반가워요! 이탈리아인이라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제겐 한 가지 로망이 있어요. 이탈리아 사람이 만든 이탈리아 음식을 먹어보는 거죠. 그런데 요리를 좋아하세요?” “흠. 난 요리는 안 해요. 요리는 엄마가 하죠. 전 그냥 먹기만 해요.” 
◇우리의 다정한 요리사가 되어준 이탈리아인 페페.


호들갑스러운 나의 첫 인사를 무뚝뚝하게 받은 그의 이름은 페페다.

이곳은 멕시코의 툴룸, 아름다운 바다와 마야 유적지로 유명하지만, 조용한 작은 마을이다.

트랑킬로(Tranquilo, 한가로운)한 ‘트랑킬로 호스텔’ 도미토리에 새로운 룸메이트로 페페와 마이클이 도착하자 나는 조금 흥분했다. 쿠바에서 카메라가 고장 나는 바람에 한국에서 친구가 보낸 새 카메라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새 친구들이 등장하자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웨이터로 일한단다. 한 달 동안 휴가를 얻어 과테말라와 멕시코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카메라를 기다리며 작은 마을에 머문 지 일주일쯤 되자 단조로운 생활이 반복되고 있었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은 후 인터넷을 조금 하고 소포의 위치를 추적한다. 그리고 슈퍼마켓에 들러 저녁거리를 사서 요리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하루는 자전거로 미국에서 남미까지 여행을 하고 있는 미국인 타이와 스테이크를 구워 먹기로 했다. 멕시코의 두툼한 스테이크용 고기는 맛도 좋지만 가격도 저렴하다. 고기 굽는 냄새가 입 안에 절로 침이 고일 만큼 향기로웠다. 샐러드도 만들고 예쁘게 테이블 세팅도 하고 나니 저쪽에서 페페와 마이클이 부러운 눈길로 쳐다본다.

‘앗, 요리를 싫어한다고 해서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딱 2인분만 만들어 나눠줄 수도 없어 미안했다.

다음날 저녁, 음식을 만들러 주방에 들어갔는데 페페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요리를 안 한다던 그가 스테이크용 고기를 사 온 것이다. ‘하하. 어제 느낀 고기 냄새를 못 견뎠나 보군!’

페페는 스테이크를 굽고, 고기를 익혔던 프라이팬에 물을 조금 붓고 삶아 뒀던 감자를 넣어 졸였다. 잠시 뒤 내게 맛보라며 접시에 덜어 주기에 한 입 먹어봤다. “아니, 이럴 수가! 삶은 감자를 단지 졸이기만 했을 뿐인데 감자를 싫어하는 내 입맛을 사로잡다니. 대단한 걸.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지? 정말 너무 맛있어!”
◇멕시코 전통음식 타코. 옥수수 가루를 빻아 만든 토르티아에 고기, 치즈, 야채를 얹고 살사소스를 뿌려 싸 먹는다.

페페를 둘러싸고 방 친구들 모두가 칭찬을 하자 으쓱해진 페페는 그날부터 우리들의 다정한 요리사가 되어버렸다. 칭찬은 사람을 얼마나 변하게 하는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어느 날 페페에게 조용히 다가가 조금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페페, 소원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들어줄래?”

수줍어하며 페페가 말한다. “뭔데?”

“네가 해준 카르보나라가 먹고 싶어.”

페페는 당장 슈퍼마켓으로 달려갔다. 그날의 저녁 메뉴 카르보나라를 위해. 재료는 간단했다. 스파게티 면과 소금 조금, 기름, 그리고 계란이 전부다. 스파게티를 삶는 동안 기름과 소금을 조금 넣는다. 스파게티 면을 건져내 날계란을 넣고 잔열로 익히면서 섞으면 카르보나라 완성! 
◇툴룸 마을 주변에 있는 마야 유적지.

그날 내 소원 중 하나였던 ‘이탈리아인이 만든 이탈리아 요리 먹어보기’가 드디어 이루어졌고, 그 행복은 툴룸의 에메랄드빛 바다보다 더 깊이 가슴속에 남아 있다.

페페는 지금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웨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덕분에 내가 밤을 새우는 날만 만나는 인터넷 메신저 친구가 되었다. 페페의 실제 고향은 이탈리아 남쪽의 사르데냐(Sardegna)다.

“아니따(필자의 스페인어 이름), 사르데냐의 바다는 카리브해보다 더 아름다워. 중남미 다음에 유럽 여행을 간다니 사르데냐에 들르는 건 어때? 난 없지만 내 대신 가족과 친구들을 소개해 줄 테니. 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머물며 엄마가 만든 음식을 먹어봐. 엄마는 나보다 음식을 더 잘하거든. (웃음)”

유럽 여행을 갔지만 혼자 갈 수 없어 페페의 집에 들르진 못했다. 하지만 사르데냐는 앞으로 갈 여행지로 남아 있다. 아름다운 사르데냐의 바다보다 페페 엄마의 음식 솜씨가 훨씬 기대된다.

여행작가(www.prettynim.com)

# 멕시코 툴룸(Tulum)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위치해 있다. 유명 휴양지인 칸쿤에서 123km 떨어져 있고,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마야어로 툴룸은 ‘벽’ ‘폐쇄’란 뜻으로, 도시가 벽으로 둘러싸인 데서 유래했다. 정글에 위치한 다른 마야 유적지와는 달리 아름다운 카리브해의 에메랄드빛 바다 절벽에 유적지가 있는 독특한 곳이다. 마야 문명은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를 중심으로 번성했고, 서기 300년쯤부터 시작돼 1528년 스페인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1200년쯤에 가장 번성했다고 한다.

# 여행정보

멕시코까지 직항은 없다. 대한항공·유나이티드항공·멕시카나는 미국을 경유하고, 에어캐나다는 캐나다를 경유해 멕시코시티나 칸쿤으로 간다. 툴룸의 저렴한 호스텔은 120∼150페소, 인터넷은 1시간에 15페소 정도. 1페소(Peso)는 약 90원. 시내에서 툴룸 해변과 유적지까지는 웨어리 트래블러 호스텔이나 란초 트랑킬로 카바나스 호스텔에서 무료로 셔틀을 운행한다. 택시나 버스도 있는데 15분 정도 소요된다. 멕시코를 여행한다면 전통음식인 타코(Taco)를 꼭 먹어봐야 한다. 특별히 주의할 것은 수돗물이다. 수질이 좋지 않아 끓여도 먹을 수 없다. 음식을 만들 때도 생수를 써야 한다. 1.5ℓ 생수가 6∼7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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