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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의 느린방랑­] 고비에서 적막한 지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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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3-05 17:30:03 수정 : 2009-03-05 17: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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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맞닿은 초원… 가도가도 모래벌판
아시아에서 아직도 탐험이나 모험을 해야 할 곳이 있다면, 몽골이 그렇다. 더더욱 고비에 가는 것은 사실 여행보다 고행에 가깝다. 고비를 건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냥 가는 것이다. 내가 탄 지프는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외곽의 ‘어버’(돌서낭)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 멈춘다. 고비까지의 무사 운행을 비는 몽골의 풍습이다. 바퀴로 한 바퀴 돌고 나면 두 발로 또 한 바퀴를 돌며 운전사는 무사 귀환을 빈다. 이제부터 일주일간 운전산는 덜컹거리는 길에 모든 것을 맡기고, 어쩔 수 없이 여행자는 운전수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고비의 길은 마치 ‘비포장길의 진수를 보여주마’ 하는 표정으로 여름 햇빛 속에 맹렬하게 누워 있다. 끝도 없고, 물도 없고, 그늘도 없는 길. 울란바토르에서 몇 개의 고개를 넘어가면 곧바로 지루한 지평선이 펼쳐진다. 하늘과 맞닿은 초원. 초원을 굴러다니는 구름. 하늘과 초원 사이로 이따금 양떼가 지나가고, 소떼와 염소떼가 지나가며 초원과 하늘의 간극을 간신히 떠받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의 길에서는 바퀴가 달려간 자국이 고스란히 차선이 된다. 10차선, 20차선, 무한차선. 갈수록 늘어나는 차선과 갈증. 아침에 출발해 점심 때가 되어서야 작은 마을을 만난다. 10여채의 건물과 수백마리의 양떼들이 점령한 마을. 여기서 밥 먹지 않으면 저녁까지 굶고 마는 정확히 끼니에 맞춰 나타난 초크토부 마을. 여기서 밥 먹고 출발하면 다시 저녁 때쯤에야 마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갑자기 어두워지고, 느닷없이 초원에 소나기가 흩뿌린다. 소나기 너머로 무지개가 걸려 있고, 무지개 사이로 양떼와 야생마 몇 마리가 풀을 뜯는 비현실적인 풍경. 길가에는 내내 야생 파꽃 무리가 일렁인다.

# 얼음계곡에 사시사철 녹지 않는 빙하


덜컹거리는 지프는 하루종일 달려서 만달고비에 도착한다. 비로소 사막이 열리고, 적막이 펼쳐지는 곳. 여기서부터 초원이 다하고 진정한 모래의 세계가 펼쳐진다. 말이나 양떼 대신 모래벌판에는 이제 낙타가 자주 눈에 띈다. 가도가도 모래땅. 다시 하루를 꼬박 달려서야 공항이 있는 사막도시 달란자드가드에 가 닿는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사막이 펼쳐진 홍고린엘스까지는 또다시 하루를 달려야 한다. 사막으로 가는 길목에는 얼음 계곡으로 알려진 욜링암이 있는데, 사시사철 녹지 않는 빙하가 이곳에 있다. 고비를 지척에 두고 빙하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내내 말이 없던 운전사는 초원의 언덕에 차를 세우고 손가락을 가리킨다.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 너머로 드디어 모래의 바다, 고비사막의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울란바토르에서 꼬박 3일을 달려서야 고비사막에 도착한 것이다. 엄격히 말해 이곳은 아직 사막이 아니라 사막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홍고린 엘스다. 때는 저녁이어서 석양 속의 사막은 온통 황금빛으로 빛난다. 아침에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침 햇살이 사구에 부딪쳐 고비사막은 더없이 눈부신 황금 물결을 이룬다.

아침이 되자 게르 한 편의 세면통에서는 눈물겨운 풍경이 연출된다. 기껏해야 2ℓ쯤 물이 담긴 세면통의 아래꼭지를 누를 때마다 한 방울 한 방울 물방울이 떨어지고, 게르 주인인지 여행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몽골인은 그것을 손바닥에 받아 세수도 하고 목까지 닦는 것이다. 사실 몽골에서는 우리가 먹는 2ℓ 생수 한 통이면 온 가족이 세수하고 남겨서 이튿날까지 세수할 분량이다. 어차피 이 세면통은 여행자를 위한 것이다. 고비의 원주민은 세수하는 것조차 사치에 가깝다. 나도 세면통으로 가 현지인이 하는 모양으로 물방울을 받아 세수를 한다. 겨우 물 한 모금 정도로 세수를 마치고 나자 느닷없는 모래돌풍이 세수한 내 얼굴을 덮치고 간다. 고비의 원주민이 굳이 씻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내가 방금 경험한 것이다.

# 황량한 지구와 원초적 우주


정말로 고비고비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는 고비를 인생의 고비에 비유하고, 누군가는 ‘고비의 고비’를 이야기한다. 고비의 비유는 이제껏 너무 많아서 어떤 비유도 참된 고비를 수사하지 못한다. 오로지 여행자의 목적은 ‘시간의 무덤’인 저 사막에 발목을 내리고, 푹푹 빠지는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저기까지 가는 방법은 낙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여기서는 낙타만이 사구를 견디고, 모래땅을 건널 수 있다. 낙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몸은 덩달아 기우뚱거린다.

사막은 이제 아침의 황금빛을 벗어버리고 흰색에 가까운 모래빛으로 바뀌어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구의 곡선 무늬와 물결 무늬는 다가갈수록 선명하고 분명해진다. 그리고 드디어 사막이다. 난생 처음 나는 낙타의 등에서 내려 사막의 모래를 발목으로 느낀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발목이 잠긴다. 이런 사막에 빠지기 위해 나는 왔다. 누군가는 고비에서 모래알만한 존재감을 안은 채 돌아가고, 누군가는 낙타의 눈에 비친 또 다른 고비를 발견한다지만, 사막에서 내가 본 것은 사막의 궁륭에 뜬 낮달과 맹렬한 직사광선과 사막의 무늬를 제압하는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사막의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싹을 틔운 갸륵한 새싹들이다. 황량한 지구와 원초적 우주!

이 사막을 횡단하는 일은 며칠의 일정으로는 불가능하다. 다만 나는 사구의 꼭대기에 올라 말 없이 모래의 풍경과 모래의 시간을 본다. 고비는 그 자체로 ‘모래땅’, ‘사막’이란 뜻이다. 그러니 ‘고비사막’이란 말은 의미의 중첩일 뿐이다. 흔히 고비에서 우리가 사막이라고 부르는 모래언덕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는 광활한 벌판이거나 성긴 풀이 듬성듬성한 모래땅이다.

살아 있는 동안, 다시 고비에 올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비가 아니더라도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나는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늘 내 앞의 광경은 나에게 마지막 풍경이다. 굳이 고비를 넘어갈 이유가 내게는 없다. 고비를 만나서 고비를 떠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던 고비에 대한 예의다. 낙타를 타고 나는 다시 사막을 빠져나간다. 그동안 사막까지 나는 3일간 달려왔고, 3일을 더 달려 울란바토르에 도착할 것이다.

여행작가

>> 생생한 몽골 유목민의 삶


고비에서 울란바토르를 향해 올 때, 노련한 운전수조차 두 번이나 길을 잃었다. 그때 우연히 구원처럼 나타난 초원의 게르 두 채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첫 번째 게르 주인은 난데없는 손님에게 딱딱한 ‘아롤’(말린 우유 덩어리)과 ‘타락’(우유를 저어 걸쭉하게 만든 요구르트)을 내왔다. 둘다 몽골에서는 최고의 간식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이것이 최악의 간식이다. 순식간에 변비를 치료하는 마술적 간식이라고나 할까. 다시 말해 순식간에 설사를 유발하는 기막힌 음식이랄까.

두 번째로 만난 게르에서도 어김없이 아롤과 타락을 접대받았다. 그리고 아이락(말젖을 발효우유)과 아르히(아이락을 증류시킨 소주, 마유주라고도 함)까지. 우리 소주의 전통이 몽골의 아르히에서 유래했다고 하던가. 초원의 게르에서 만난 몽골 할아버지조차 아르히를 따라주며 ‘소주’라고 또박또박 발음했다. 음식과 술을 대접한 그들은 우리를 밖으로 데려가더니 ‘올가’(올가미)로 잡아온 야생마를 구경시켜주고, 말젖 짜는 것도 보여주고, 그것도 모자라 말까지 태워주었다. 길을 잃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는 라이브 몽골 체험. 나는 한 번 더 운전사가 길을 잃기 바랐으나, 그것으로 라이브 몽골 체험은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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