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음 많던 소녀에게 토슈즈는 ‘하늘을 나는’ 요술 신발이었다. 중학교 1학년,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한 소녀는 대신 하루도 빠짐없이 토슈즈를 신고 거울 앞에 섰다. 그렇게 보낸 지 30년, 발레리나 강수진(42?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은 ‘동양인 최초’란 타이틀을 5개나 거머쥐며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강철 나비’란 별명처럼 훨훨 날갯짓을 펼치고 있다. 그가 밝힌 성공 비결은 ‘꾸준한 노력’이다. 26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월드스타갈라공연을 마친 강수진은 곧장 인근의 앙상블시어터로 향했다. 토슈즈 대신 구두를 신고, 무용수가 아닌 ‘명예교사’로 학생들 앞에 서기 위해서다.
◇일일 명예교사로 학생들 앞에 선 발레리나 강수진은 “발레를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조그마한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긍정적인 사고 덕분”이라며 “행복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고 스스로 즐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꿈이 현실로 와 있어요. 차근차근 계속 해나가는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언젠가는 지금 배우는 것들이 삶에서 다 드러나요.”
그가 늘어놓은 ‘비법’에 귀를 쫑긋 세운 학생들은 금세 그에게 빨려들어갔다. 질문 시간이 주어지자, 손을 번쩍 치켜든 학생들은 먼저 하겠다고 열띤 경쟁을 벌였다. 한 남학생의 궁금증은 “쉬는 시간엔 뭘 하는지”였다. “‘쉰다’는 단어 자체를 싫어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밥 먹을 때나 잘 때는 쉬죠. 그때를 빼곤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지금 쉴 필요는 없어요. 무덤 가서 쉬면 되니까요.”
공부에 때가 있음을 강조한 그는 “나이 들면 올리브유를 쳐도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며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24시간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 학생들은 인생의 목표도 거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표는) 작다”며 웃음을 머금은 강수진은 “오늘 하루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했다. 하루하루 100% 전념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생긴다는 그는 자기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살면 좋은 길로 나아간다고 확신했다.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성남국제무용제에서 선보인 존 크랑코 작품 ‘레전드’. 강수진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동료인 제이슨 레일리와 호흡을 맞췄다. |
“삶은 원처럼 돌고 도는 거여서 올라가면 내려갈 때도 있어요. 힘듦도 알아야 기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거죠. 힘들 때 ‘이 악물고’ 견뎌내면 다시 좋은 때가 찾아와요.”
30분으로 예정된 ‘인생 수업’은 한 시간을 훌쩍 넘기며 오후 9시30분이 돼서야 막을 내렸다. 학생들과 강수진의 대화는 솔직담백했다. 이날 남편 튄지 쇼크만과 동행한 강수진은 이 자리에서 중학교 친구와 재회의 시간도 가졌다.
강연을 마친 강수진은 “학생들과의 시간은 항상 재미있다”고 즐거워했다. 그에게도 새삼 유년 시절을 되돌아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못할 것 같다”며 웃음을 지은 그는 “그때의 시간이 현재 삶을 견뎌내게 한 ‘보약’”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강수진의 ‘발레 이야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17명의 저명 예술가를 명예교사로 위촉해 마련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진행됐다.
올 12월까지 조수미 정명훈 은희경 문훈숙 등이 예술분야의 명예교사로 나서며 참가 신청은 학교 단위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 하면 된다. (02)6209-5961
성남=윤성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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