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 없던 산기슭 땅을 수행자의 마을로 가꾼 이는 출가자가 아닌 일반인이다. 주인공은 기업인 손병옥(56)씨. 호두마을 설립자인 손씨는 “이제 나는 수행자 뒷바라지를 하는 자원봉사자이며 한 사람의 수행자”라고 했다. 2002년 호두마을을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전환해 모든 수행자를 주인으로 만들고 자신의 공식직함도 고문으로 남겼다.
호두마을 부지는 손 고문이 20년 전 개인 토굴을 짓기 위해 마련한 것. 20대에 통도사로 잠시 출가하기도 했던 그이지만 불교, 불자라는 말에는 정색을 한다. 그는 나를 완성하는 수행은 종교의 개념에서 벗어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종교가 분별심을 조장하는 데 앞장서 이권을 챙기고 있지 않냐, 부자들이 사회에 십일조를 낸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자본주의가 되겠냐”고 반문한다.
인천 지역의 꽤 규모 있는 기업인인 그는 회사 내 전담직원을 둘 만큼 회사 수익의 사회 환원에 관심이 많았다. 매달 120가정을 후원하는 등 이웃돕기에 힘을 쏟았다. 그러다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조금 가진 사람이든 많이 가진 사람이든 문제는 돈이 아니라 행복이니까요. 사업이 번창하는 순간에도 무상함을 느꼈죠. 이 행복과 성취도 영원한 것이 아니니까요.”
중국 등 각지에 도인을 찾아다닌 끝에 위파사나를 접하면서 수행을 통한 진정한 행복을 배웠다는 손 고문. 그는 기부에 인색한 우리 문화에서 특별한 방식의 보시를 시작했다. “부처께서 깨달았다는 위파사나 수행법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수행터로 일궈낸 것뿐입니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내가 가진 것을 나눠야 하니까요.”
그는 처자식에게도 ‘재산 상속이 없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자녀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나의 상속자도 아니지요. 재산을 상속한다면 자식이 꿈을 위해 노력할 기회를 빼앗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각자 노력한 만큼 잘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닙니까.” 대구 지하철 참사를 예로 들면서 행복한 사회 속에서만 내가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불교의 ‘연기 사상’이 먼 곳에 있지 않음을 느꼈다.
일반인들의 자율적 수행공간인 ‘호두마을’은 1∼2년 내 출가 수행자들을 위한 전용시설도 지을 계획이다. “출가 수행자들이 소임 없이 오로지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게 손 고문의 생각이다.
천안=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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