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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소설작품 흥행 견인 세태 씁쓸”

입력 : 2012-04-27 20:19:53 수정 : 2012-04-27 20: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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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교’로 새삼 주목받는 소설가 박범신
“영상문화로 완전히 재편… 문학의 힘 약화 실감”
생애 40번째 장편소설 준비… 논산으로 귀향
충남 논산에 탑정호란 호수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저수지를 파면서 생긴 이 인공호수는 둘레가 30㎞에 이를 만큼 넓고 물이 맑아 논산의 명물로 꼽힌다. 호수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붉은 벽돌로 지은 2층집. 그곳에 소설가 박범신(66)씨가 살고 있다. 지난해 11월 “생애 40번째 장편소설을 쓰겠다”며 서울을 떠나 귀향한 박씨를 위해 논산시가 선뜻 내준 공간이다. 상반기 영화계 최고 화제작으로 불리는 ‘은교’ 개봉으로 요즘 부쩍 바빠졌다는 박씨를 26일 오전 논산 자택에서 만났다.

소설가 박범신씨는 소설 ‘은교’에 대해 “너무 성적인 측면만 부각됐는데 그렇지 않다. 삶의 유한성, 인간의 존재론적 슬픔에 관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충남 논산의 자택 2층 베란다에 선 작가 뒤로 푸른 탑정호가 보인다.
영화 ‘은교’는 70대 노시인과 열일곱 살 여고생의 사랑을 다룬 그의 소설 ‘은교’(문학동네)가 원작이다. 영화 개봉 소식이 전해지면서 2010년 출간된 소설 ‘은교’가 국내 소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하다. 소설가 입장에서 책이 잘 팔린다는 건 좋은 일이나, 그렇다고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한다.

“씁쓸하죠. 1980년대에는 작가가 영화의 흥행을 견인했는데, 90년대 들어 영상문화로 완전히 재편됐어요. 문학의 힘이 약해졌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은교’의 주인공은 문단에서 최고의 추앙을 받는 시인 이적요와 시인의 집 근처에 사는 여고 2학년생 은교다. 거의 평생을 독신으로 산 이적요는 우연히 만난 은교를 통해 새삼 사랑과 성(性)에 눈을 뜬다. 하지만 노인과 소녀의 연애가 사회적 용인을 받을 수는 없는 법. 게다가 이적요의 제자인 30대 남성 서지우가 둘 사이에 끼어들며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소설에서 ‘천재시인’으로 그려진 이적요는 박씨와 얼마나 닮았을까.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주제나 감정은 정직하게 나를 반영하고 있어요. 60대가 되면서 나이를 먹는 슬픔이랄까, 삶의 유한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아주 중요한 존재론적 문제거든요. 명분과 본능적 욕망 사이에서의 갈등, 재능이라는 것이 예술가에게 주는 고통과 환희 등도 그렇고…. 아주 강력하게 나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여고생과의 사랑 같은 건 완전히 픽션입니다. 내가 여고생을 어디서 보겠어요? 길에서나 보지. (웃음)”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시대 ‘고개 숙인 남자’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를 느낄 수 있다. 소설 속 이적요는 늙었다는 것을 마치 ‘범죄’와 동일시하는 세간의 인식에 강한 반감을 표출한다. 은교와 함께 들른 어느 카페에서 다른 손님들의 차가운 눈길을 접한 이적요는 이렇게 되뇐다. ‘세계 어디에, 저렇게 또래들만 모여 앉아 늙은이는 무조건 나가 달라고 말하는 곳이 있을까.’ (276쪽)

“우리나라 남자들 참 쓸쓸합니다. 가부장제의 절대적 권력은 진작 없어졌는데 그 관습과 사고, 허세는 그대로 남아있거든요. 어떡하겠어요, 그렇게 길러졌는데…. 우리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금 중장년과 노년의 남자들이 이룬 겁니다. 그들이 ‘우리는 위대한 세대였다’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다만 그들도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해요. 옛날의 고정관념, 편견을 고집하면 더 고독해질 뿐이죠. 변하려고 노력하면서 노년을 보내야 합니다.”

그의 소설 중 영화화하면 좋을 것 같은 작품이 ‘은교’말고 더 있는지 물었다. 박씨는 ‘촐라체’(2008), ‘고산자’(2009), ‘비즈니스’(2010),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2011) 등을 꼽았다. 특히 본격 산악소설인 ‘촐라체’는 등산을 즐기는 인구가 갈수록 늘어나는 요즘 세태와 잘 들어맞는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소설 창작을 위해 귀향을 결심한 박씨의 신작 계획은 무엇일까.

“수필에 가까운, 수채화 같은 소설 한 편을 쓰고 있죠. 제목은 ‘인생’이라고 붙여 봤어요. 논산 강경 하면 떠오르는 젓갈, 일생을 논산에서 보낸 조선시대 유학자 윤증을 소재로 한 소설도 구상 중입니다.” 

논산=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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