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국가일수록 영향력 더 커
2035년 군 병력 50만 붕괴 우려
초저출산 극복해야 안보위기 해소
인류 역사에서 인구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였다. 국가의 안정과 번성이 군사력, 노동력, 세원 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인구를 보유하느냐에 의해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구 증가는 통치자의 중요한 덕목이자 의무가 되었다.
특히 국가의 흥망성쇠가 군사력에 좌우되었다는 점에서, 인구는 곧 생존의 문제였다. 역사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대부분 국가는 영토 분쟁, 경제적 이해관계, 인종·종교·체제의 대립 속에서 끊임없는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이 모든 전쟁에서 승패를 가른 것은 결국 인구에 기반을 둔 군사력의 차이였다.
대표적 사례는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 춘추시대(B.C. 770년~B.C. 477년)의 오월전쟁이다. 당시 지금의 항저우 지역을 경계로 남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던 오나라와 월나라는 치열한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월나라의 구천왕은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체계적인 국력 증강에 나섰다. 출산 장려를 통해 병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고, 이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야말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결실이었다.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709~1710년 프랑스는 흉년과 전염병으로 사망률이 증가하고 결혼율과 출생률은 감소했다. 반면 18세기부터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은 인구 증가를 통해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870년 서유럽 패권을 둘러싼 두 나라의 전쟁(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자, 프랑스 지식인들은 인구 감소와 인구의 질적 저하를 패인으로 지목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프랑스는 이후에도 인구 감소로 이류의 군사적 강대국이 되어 다시 패배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였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내에서 ‘인구증가주의’가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중국의 오월전쟁이나 프랑스·독일 간 보볼전쟁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저명한 인구학자 마이클 타이텔바움은 2014년 서울 국제심포지엄에서 흥미로운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역사적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의식과 이로 인한 인구 경쟁이 더욱 치열했다는 것이다. 14세기부터 전쟁과 점령, 통합, 그리고 분리를 겪었던 동유럽의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과 폴란드,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힘의 우위를 갖고자 경쟁적으로 인구를 늘리고자 했다. 독일과 러시아도 세계 패권을 겨냥하여 인구를 늘리는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다. 예로 제1차 세계대전 후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전쟁 수행을 위해 우월한 유전자, 즉 ‘순수 독일계’ 혈통의 출산을 장려하고자 자녀 수에 따른 대출 이자 감면까지 도입했다. 기독교, 그리스정교, 이슬람교가 교차하는 발칸반도 국가들의 인구 경쟁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한국, 중국 및 일본 3국은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을 겪었다. 남한과 북한 간, 그리고 중국과 대만 간에도 전쟁이 있었으며 여전히 긴장관계에 있다. 이들 동북아 국가 사이에도 국력을 키우기 위한 경쟁이 계속될 것이며, 그 경쟁에는 ‘인구 경쟁’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초저출산 현상을 장기간 겪고 있는 우리의 국방은 어떠할까? 최근 국회에서 개최된 ‘2030년대 국방력 유지방안 모색’ 세미나에서 국방부 관계자는 2035년 이후 20대 남성 감소로 군 상비병력 50만명 유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와 관련해 비전투분야의 민간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향후 병력자원 감소에 따른 다양한 대안들이 마련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병력감축 자체만으로도 국민은 미래 안보에 대해 불안감을 가질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조사를 통해 나타나는 공통점 중 하나는 저출산 현상에 대해 정부와 개인 간 시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개인들은 저출산의 영향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저출산에 따른 안보 위기는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임이 틀림없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의 실효성을 더욱 강화하고, 국민이 그러한 정책을 신뢰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초저출산을 극복하고 미래 안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삼식 한양대학교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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