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풍선효과’ 정부는 팔짱
부실위험 높아 연체대란 우려
자영업 부채 위기는 은행권의 무분별한 대출 확대와 금융당국의 감독 부재의 합작품이다. 최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맞아 자영업 창업이 봇물을 이룬다. 대출억제 정책으로 대출 길이 막힌 은행권은 이를 놓칠 리 없다. 은행들은 앞다퉈 자영업 대출 경쟁을 벌였다. 당국의 감독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가계대출에만 목소리를 높일 뿐 자영업 대출에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자영업 부채는 늘고 연체율도 덩달아 뛰기 시작했다.
◆감독 부재 속에 급증하는 자영업 대출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가계대출은 당국의 억제 방침으로 증가세가 한풀 꺾인 양상이다. 신한, 우리, 국민, 하나, 농협, 기업 등 6대 시중은행의 올해 6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368조2984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0.7%(2조4000억원) 느는 데 그쳤다. 이에 반해 국민 등 5대 은행의 자영업 대출은 같은 기간 6.1%(6조2666억원)나 불었다. 자영업 대출 증가율이 가계대출보다 9배 정도 높은 셈이다.
은행별 자영업 대출잔액은 국민은행이 지난 6월말 39조853억원으로 작년 동월보다 6조1273억원이 늘었다. 농협은 2조3940억원, 신한은행 2조828억원, 하나은행 1조5487억원, 우리은행은 2635억원 증가했다.
자영업 대출 급증 현상은 금융당국의 감독 부재 책임이 적지 않다. 다시 말해 베이비붐 세대 퇴직자들이 음식업, 숙박업과 같은 생계형 창업에 나서자 은행들이 앞다퉈 대출을 늘린 결과다. 당국의 가계대출 억제에 따른 출구전략 수단으로 자영업 대출에 눈을 돌렸다는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하면서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자영업자 대출에서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고조되는 연체대란 재발 위기
자영업자 대출은 부실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상환능력은 낮은 반면 고위험 차입 비중이 큰 탓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중은 159%로 상용근로자의 83%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부실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 비중도 14.4%로 임금근로자(8.5%)보다 크다.
부동산담보대출 비중이 높고 원리금을 한꺼번에 갚는 만기 일시상환 대출이 많은 점은 부실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자영업자 대출 가운데 만기 일시상환 비중은 담보대출이 47.7%, 신용대출은 25.7%로 일반 근로자(담보대출 38.0%, 신용대출 21.9%)보다 높다.
자영업자가 처한 상황도 열악하다. 대부분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에 집중돼 폐업이나 대출 부실이 잇따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LG경제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국내 자영업 창업이 저부가가치 산업에 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자영업 창업이 많은 음식·숙박업의 경우 올 1분기 1인당 명목 부가가치는 210만원에 불과했다. 제조업은 1인당 부가가치가 2000만원을 넘고 부동산은 4200만원이나 된다. 포화시장에서 창업이 과도하게 늘어난 탓이다.
이런 창업 열풍은 향후 내수 침체와 맞물려 심각한 후유증을 예고한다. 불황이 장기화되면 자영업자 연체 대란과 연쇄 부도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자영업 대출 부실은 가계부채 상환 악화로 이어져 금융시장 붕괴란 최악의 사태를 부를 위험성이 없지 않다.
이규복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영업자 부채가 연체 대란으로 번지기 전에 선제적,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 확대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재연·김유나 기자 march2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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