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도 타격… 美의 잘못된 亞정책 탓
미국 블룸버그통신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20일 “최근 정치적 위기에 처했거나 사임한 아시아·태평양지역 지도자들은 공통적으로 ‘친부시 노선’을 걸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8일 사임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파키스탄 대통령이다.
그는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한 이후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 정책’에 편승해 미국의 가장 확고한 동맹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 무샤라프는 미국에 기대 자신의 정치적 야욕만 채우는 독재자에 불과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부샤라프(부시+무샤라프)’. 그는 결국 민심을 돌리지 못하고 권좌에 오른 지 9년 만에 내려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 역시 도를 넘은 친미주의로 사임의 길을 걸은 경우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임 총리가 이라크에 자위대 파병을 강행해 평화헌법 위배 논란을 불러일으킨 상황에서 아베 전 총리는 한 발 더 나아가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친미 일변도의 정책은 거센 역풍을 맞았고, 취임 1년 만에 사임했다. 그가 사임을 발표한 날은 공교롭게도 그가 호주에서 부시 대통령을 만난 지 나흘 만이었다. 이 자리에 같이 있던 존 하워드 전 호주 총리도 그로부터 두 달 뒤 총리직에서 내려왔다.
이라크 파병을 강행하는 등 뚜렷한 친미 성향을 보였던 하워드 전 총리는 ‘부시의 부보안관’이라는 별명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다. 하워드가 총리로 있는 동안 호주 경제는 선진국 평균 경제성장률을 최고 3%포인트까지 웃도는 호황을 구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1월 이라크 철군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케빈 러드 노동당 당수에게 총리직을 넘겨야 했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지난달 간신히 실각 위기를 넘겼다. 지난해 미국과 민간 핵연료·핵기술 이전 등 핵협정에 서명한 게 화근이었다. 집권 연정에 참여했던 좌파 정당은 “인도를 미국에 종속시키는 불평등 조약”이라며 연정에서 탈퇴했고, 인도 의회는 지난달 싱 총리에 대한 신임투표를 했다.
그는 275대 256이라는 크지 않은 표차로 위기를 모면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로 치명타를 입었다. 20년 만에 최대 규모의 거리시위가 벌어지고 내각 핵심 인물이 교체됐지만 여전히 정치적 후유증이 가시지 않고 있다.
페섹은 이런 일련의 사건이 부시 대통령의 잘못된 아시아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부시 대통령은 테러 소탕에만 관심이 있을 뿐 아시아를 등한시했고, 바로 이 점이 아시아권에서 반미주의를 부추겼다”며 “차기 대통령은 아시아와의 관계개선을 외교의 우선순위에 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지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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