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 문화체육부장 |
작은 거인 조용필이 2시간40분 동안 36곡의 노래를 열창하는 내내 이 중후한 관객들은 봄밤의 운동장 스탠드를 가득 메우고 색색의 야광봉을 흔들며 환호했다. 아저씨 한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늦둥이 하나 등에 짊어진 채 노래에 맞춰 시종 리드미컬하게 몸을 흔들었다. 아이가 멀미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 아저씨 앞에서는 아주머니 한 분이 그동안 눌러온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리려는 듯 한시도 쉬지 않고 정열적으로 야광봉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지금은 남편과 자식들 수발하느라 주름살이 늘고 몸은 불어 어디를 가나 천생 아줌마 소리를 듣지만, 그 여인에게도 한때는 오빠를 연호하던 시절이 있었을 테다.
이들이야말로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심 세대임에도 일을 떠나 따로 위로받을 만한 문화 현장은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가뜩이나 피로한 몸을 술자리에서 혹사시키거나, 요즘은 이것마저 시들해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마지막 여흥은 노래방에 달려가 푸는 경우가 태반이다. 공연장은 젊은 사람들에게 내주고, 그것도 콘서트 현장은 10대에게 넘겨줘 버렸다. 사실 넘겨준 게 아니라 그들이 갈 만한 곳이 원천봉쇄돼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조용필 콘서트 현장의 아줌마 아저씨 물결을 보면 그동안 그들이 바빠서, 혹은 욕구가 없어서 공연장에 가지 않은 게 아니라 갈 만한 공연이 없어서 참고 참아왔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된다.
이러한 중장년의 문화적 욕구는 몇 가지 사례에서도 입증된다. 지난 2월 요양원을 배경으로 인생의 황혼에서 만난 마지막 사랑을 그린 뮤지컬 ‘러브’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열었는데 이때에도 전체 관객 중 40대 이상이 80%를 차지했다. 올 초 박정자 주연의 연극 ‘19 그리고 80’의 관객층도 중장년이 압도적이었다. 한국연극의 중심 관객은 20대 여성과 커플들이 대부분이었고, 몇몇 특이한 사례를 제외하면 지금도 여전하다.
중장년층이 바쁘고 무감각해서 문화 현장과 멀어진다기보다는 이들을 수용할 만한 콘텐츠가 태부족인 게 문제다. 뮤지컬 쪽에서는 중장년 관객이 늘어난다는 사실에 착안해 그들을 위한 작품을 기획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 ‘언 발에 오줌 누기’로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날마다 전투를 치르고 있는 아저씨 아줌마들을 위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들을 소모적인 술자리와 노래방 골방에서 끌어내 열린 공간에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게 할 문화 현장을 일상화시킬 수는 없을까.
다행히 여건은 괜찮다. 이들 이전 세대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불철주야 몸으로 때우던 산업화세대였다면, 지금 40, 50대는 문화 부흥세대다.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에 걸쳐 일어난 다양한 문화운동의 주역이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조차 일상에 매몰돼 조용히 늙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금 ‘동방신기’나 ‘신화’의 콘서트 현장을 찾아다니며 열광하는 10, 20대들도 이런 식의 한국적 문화지형에서 나이 들어가다 보면 요즘의 중장년 신세를 면치 못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 세대가 고르게 누릴 수 있는 열린 공간의 다양한 문화콘텐츠, 우리 사회 구성원의 정신건강을 배려하는 또 하나의 ‘건강보험’이 아닐까.
조용호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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