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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타는 지구… ‘물 발자국’을 찾아라

입력 : 2009-03-16 17:34:17 수정 : 2009-03-16 17: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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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물 사용량 추적… 쿼터제 도입해야”
“당신은 하루에 물을 얼만큼 씁니까?” 대충 가늠하면 하루에 마시고, 씻고, 요리하고, 청소할 때 쓰는 물의 양을 더하면 답이 나올 듯하다. 과연 그럴까. 유네스코 산하 물·환경교육기관(IHE)에 따르면 면 티셔츠 한 장을 만들려면 2700ℓ의 물이 필요하다. 청바지 한 벌에는 무려 1만2000ℓ나 들어간다. 만약 오늘 티셔츠와 청바지를 하나씩 샀다면 1만4700ℓ의 물을 소비한 셈이다. 이처럼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쓰인 물을 ‘가상 물(virtual water)’ 혹은 ‘물 발자국(water footprint)’이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전 세계 가뭄이 심해지자 요즘 국제사회에서는 물 발자국이란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세계야생동물기금(WWF), 유네스코 등 7개 국제환경단체는 지난해 12월 ‘세계 물발자국 네트워크(WFN)’를 발족했다. 16일부터 열리는 세계 물 포럼의 주요 주제도 물발자국이다. 전문가들은 왜 눈에 안 보이는 물까지 들먹이게 된 걸까.

◆목타는 지구=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통상 11월에서 3월 사이에 겨울 우기를 맞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2007년부터 가뭄이 계속되면서 저수량이 17년래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가뭄 비상사태를 선언했고, 물 배급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농민들은 물을 많이 먹는 아보카도나무를 뽑아내고 건조한 땅에서 잘 자라는 올리브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세기 안에 캘리포니아주 강수량이 24∼30%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지난겨울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었고, 호주 동남부는 7년째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강원 지역도 가뭄이 심각하다.

정반대 현상도 일어난다. 유럽 일대는 지난달 폭설과 폭우로 한바탕 물난리를 겪었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물은 곧 쓸 수 없는 물과 같다. 유엔은 지구 기후변화로 2025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 즉 55억 명이 물부족 국가에 살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물을 거래하자”=물 부족 현상이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면서 전문가들은 그 해결도 국제적인 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첫걸음은 물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일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빈민촌 주민들은 수돗물 1000ℓ당 4파운드(약 8300원)를 낸다. 같은 도시 내 부유층이 1000ℓ의 수돗물에 지불하는 돈은 0.17파운드. 영국과 미국은 각각 0.81파운드, 0.34파운드를 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농민들은 국내 총 공급량의 20%를 쓰고도 연간 4억1600만달러(약 6200억원)에 이르는 정부 보조금 덕에 물값을 거의 내지 않는다. 스페인 농민들도 실제 물 소비가의 2%만 지불한다.

국제적으로 봤을 때 당장 물 한방울이 귀한 아프리카 빈민은 선진국 주민보다 수십 배나 더 비싸게 물을 사고, 물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들은 거저 물을 얻어가는 이상한 결과가 빚어졌다. 물을 많이 쓰는 나라가 물을 적게 쓰는 나라로부터 사용권을 사들이는 ‘물 사용권 거래제’를 시행하자는 주장이 나온 건 이런 배경에서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 세상에 ‘물 시장’이 없다는 것이다. 페트병에 담긴 생수가 거래되기는 하지만 전 세계 물 소비량의 1%에도 못 미치는 무의미한 규모다. 이 미미한 생수 거래를 빼면 석유 시장이나 곡물 시장같이 눈에 보이는 물 시장은 없다. 즉, 물이 지구촌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가 누구한테 물 사용권을 사야 하는지 가늠할 길이 없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물 발자국이다. 우리가 쓰는 물의 90%는 농업·공업 용수로 흘러간다. 생산과정에 쓰인 물 발자국을 따라가면 국가별 물 수입·수출량을 알 수 있다. 물 발자국을 알면 생산 과정에서 물 사용량을 조절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WFN의 집계에 따르면 가상의 물을 순수입하는 상위 20위권은 유럽과 아시아가 장악했다.

일본이 한 해 평균 92조ℓ를 순수입했고, 이탈리아·영국·독일·한국이 뒤를 이었다. 반면 가상 물 순수출국 20위권에는 코트디부아르, 가나, 카메룬, 수단, 튀니지 등 아프리카 국가가 대거 포함됐다. 항시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국가가 비싼 돈을 주고 물을 사고, 그 와중에 물을 수출까지 하는 불균형 문제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이는 제3세계의 수출품이 물 소모량이 많은 농산품 등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물 발자국을 토대로 나라별 사용 쿼터를 정해 물 수입국이 수출국에 대가를 지불하도록 함으로써 전 세계 물 사용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갈 길 먼 ‘물 거래’=물 거래는 오만의 오아시스 지대와 스위스 일부 농촌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취수원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몇 개 그룹으로 나눠 각각 물 사용량을 정한 뒤 예상보다 물을 많이 쓸 것 같으면 다른 그룹에 돈을 주고 물 사용권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국제적인 차원으로 확대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국제관계와 안보네트워크(ISN)에 따르면 두 나라 이상을 거쳐 흐르는 강은 전 세계 200개가 넘는다. 이스라엘·시리아·팔레스타인·요르단을 흐르는 요르단강을 비롯해 나일강(이집트·우간다·수단 경유), 리오그란데강(미국·멕시코) 등에서는 수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이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물 사용권 거래도 힘들어진다.

또 아시아와 유럽이 아프리카에 물 사용권을 지급한다 해도 그 돈이 실제 아프리카의 가뭄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 공짜였던 가상 물이 거래됨으로써 물가가 인상된다는 점도 지구촌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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