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된 국내 보호기술 정보유출에 더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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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일 인하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
기존의 소책자 형태 여권에서 집적회로(IC)칩이 내장된 전자여권으로 바뀌면 바이오정보(얼굴, 지문)를 포함한 개인정보가 저장되므로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우려에 따라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개인정보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보안기술 표준을 제정했다.
첫째, 비접촉식 IC칩은 전자여권 소지자의 개인정보, 바이오정보, 보안키를 저장하고 있으며 최대 5㎝ 거리에서 적법한 판독기만으로 내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둘째, 전자여권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국가서명인증센터가 발급하는 전자서명을 IC칩에 부여해 저장된 개인정보가 한국 정부가 발급한 것이며 위·변조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셋째, 전자여권의 복제를 방지하기 위해 암호키를 IC칩에 저장하고 출입국 과정에서 검증해 복제 여부를 검증한다. 넷째, 바이오정보에 접근하는 경우에는 일반 신원정보에 접근할 때보다 더 복잡한 확장접근제어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정보 유출을 차단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급하는 전자여권은 이 같은 국제표준의 보호기술을 준수할 뿐만 아니라 특화된 보호기술을 내장하고 있다. 특히 전자여권을 발급하기 위해 제출된 바이오정보는 획득, 통신, 저장, 발급, 폐기의 유통과정에서 정보 보호 표준을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정보 유출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또 바이오정보가 잘못 유출되는 경우 관리기관의 책임 소재를 확인할 수 있도록 얼굴, 지문 정보에 사람이 인지할 수 없는 은닉 정보를 포함시켜 보호 기능을 강화했다.
김학일 인하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美 비자면제 대가로 자국민의 지문정보 넘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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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철 동국대 법학과 교수 |
전자여권에 대한 명확한 법적 개념 규정은 없다. 여권법에 간접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개념 정의상 전자여권을 ‘자국민이 외국여행 시 소지해야 하는 전자화된 문서’로 보아도 큰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전자여권 시행에 있어 논란이 일어나는 걸까. 겉으로는 국제범죄 및 테러를 방지하고 자국민의 국외여행 편의를 도모하면서 여권의 보안성을 강화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비자 면제프로그램의 요건 충족을 위한 것이다.
생체여권이라고도 불리는 전자여권의 문제점은 전체적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이 있고,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정보주체의 지문날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지문은 사회 속에서 확률상 동일함이 거의 없어 고유식별 기능을 한다. 지문날인은 통상 범죄자 대조용으로 주로 은밀하게 사용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주민등록증 발급에 있어 지문날인을 요구하는 규범을 2005년 과잉금지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전자여권 발급에 있어 지문날인도 동일한 것으로 보아 같은 판단을 내릴 것인지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한다. 무엇보다 지문날인이 없어도 여권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도 있는데, 우리 국민의 지문정보만 외국에서 신원확인 용도로 활용되고 그 외국 국민들의 지문은 우리가 신원을 확인할 수가 없다면 우리가 최강국이 되기 전까지는 하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1년 이상 거주 목적으로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해 지문날인을 폐지했던 인권의식은 어디로 가고 왜 지문날인이 수록된 전자여권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임규철 동국대 법학과 교수
정보통신사회 흐름에 대안없는 반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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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선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부회장 |
전자여권이란 국제민간항공기구와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정한 국제표준에 따라 성명·여권번호와 같은 개인 신원정보와 얼굴·지문과 같은 바이오 인식정보를 전자적으로 수록한 비접촉식 전자칩이 내장된 기계 판독식 여권이다. 전자여권도 외양은 기존 여권과 유사하다. 그러나 여권 뒷표지에는 개인 신원정보, 바이오 인식정보 그리고 이들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보안요소가 수록된 전자칩과 안테나가 내장돼 있다.
우리의 전자여권은 이미 주요 선진국 공항 출입국 심사대에서 정상 판독되는것을 확인했으며 기술적으로 선진국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다. 또 현재의 국내 기술은 개인정보의 유출을 차단할 수 있는 우수한 보안기능을 갖고 있어 선진국의 전자여권 기술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보안 문제는 항상 존재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산업계와 연구기관의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뒤따라야 비로소 안전한 전자여권 도입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그런데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기술을 선진국에 수출하지 못하고 오히려 외국 기술을 도입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술력을 맹신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향후 도래할 정보통신기술 사회에 역행하는, 대안이 없는 반대가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자원도 없고 내수시장이 크지도 않은 작은 나라에서 국민생활 향상을 가져올 우수한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은 국제 경제전쟁 시대에서 우리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백의선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부회장
생체정보까지 낱낱이 노출시키는 건 폭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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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욱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
통치자들은 관리하는 대상에게 번호를 부여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러한 경향은 불에 달군 쇠붙이로 만드는 낙인에서 13자리 숫자로, 다시 전자 칩의 형태로 발전돼 왔다. 전자 칩을 피부 밑에 이식하는 것은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사용을 승인하고 있는 것이고 전자여권(생체여권)이 상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전자여권은 칩을 몸에 내장하는 대신에 몸을 칩에 내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자여권을 들고 길을 떠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계다. 기계의 한쪽 끝에는 전자화된 신체를 올려 놓고 다른 쪽 끝에는 전자화될 신체를 올려 놓고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여행자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기계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언제부터 관계가 역전됐다는 착잡한 심정을 느끼고 있을까. 여권 사진을 찍을 때 ‘귀 가리면 안 되고, 웃어도 안 돼요’라고 주의를 주던 사진관 아저씨를 떠올릴까. 이 굴욕적인 검사만 통과하면 허락받은 자유가 열린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잠깐의 고통을 인내하고 나면 기계는 결과를 돌려준다. 최종적으로 여행자는 0 아니면 1이 된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자아를 찾는 여행이 유행이라고 한다. 지구를 여행하는 많은 여행객 중 인간만이 서로 불신하고 검사하고 허락받는다. 이제는 기계 앞에 신체를 모두 노출하는 방법까지 동원할 참이다. 어떤 동물도 이렇게 폭력적인 방법을 생각해 내지는 못했다.
김승욱 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정리=황온중 기자
ojhw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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