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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가 세 돌 되는 윤 3월27일에 학질이라는 병을 얻었다. 먼저 몸이 차가워지고 그 후에 열이 난다…/소고기와 생과일이/어린아이에게 병을 잘 일으킨다는데…/주고 싶지만 먹으면 비장(脾臟)을 상하게 할 것 같고/주지 않으면 화를 내고 울며 보챈다…/

고려말의 명재상 이조년의 후손인 묵재 이문건(1494∼1567)은 유배생활 때 손자를 돌보며 양아록(養兒錄)을 집필했다. 생전에 6명의 자녀를 모두 땅에 묻어야 했던 묵재는 손자가 학질에 걸리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픈 심정을 적고 있다.

‘국경 없는 질병’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해 감염된다. 증상은 독감처럼 두통, 미열 등으로 시작해 오한과 고열이 번갈아 발생한다. 한방에서는 학질이라고 일컫는다. 어떠한 약도 말라리아를 완벽하게 예방할 수 없기에 심각성이 있다. 지구상에는 수천종의 모기가 있다. 그중 10%가 각종 질병을 옮긴다. 국내에서 주로 발병하는 말라리아는 3일마다 증세가 나타나는 삼일열이다.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열대열 말라리아의 경우 치사율이 매우 높다. 영국의 낭만시인 바이런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이 병에 걸려 사망했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4억∼5억명이 감염되며, 이중 150만명 정도가 숨진다고 한다. 단일 질병으로는 가장 많은 수다. 아프리카에선 30초마다 어린이 1명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1년에 100만여명이 사망한다.

지난 25일은 유엔이 정한 제1회 ‘세계 말라리아의 날’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말라리아 퇴치운동 친선대사인 벨기에의 아스트리드 공주는 잠비아에서 말라리아 근절운동을 벌였다. 정유사 엑손모빌은 말라리아 퇴치사업에 1000만달러를 기부한 데 이어 지속적으로 근절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서울대 기생충학교실은 30여년 전 남한지역에서 사라진 말라리아가 이미 토착화됐다는 연구결과를 엊그제 내놨다. 말라리아 모기가 국내에도 서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 초까지만 해도 말라리아 감염자 대부분은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는 군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군인과 민간인 감염 비율이 같아졌다. 말라리아가 토착화한 것은 기후변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도 무더위로 열대야 현상이 늘고 있어 예방과 치료대책을 소홀히 해선 안 될 때다.

박병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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