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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비평]공공부문 인력감축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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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5-29 21:37:27 수정 : 2008-05-29 21: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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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가 있었다. 희망을 안고 국내 유명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개발용지 매입 업무를 맡은 그는 어느 날 한 지방자치단체에 가 담당 공무원과 면담을 했다. 명함을 주고 얘기를 꺼냈으나 공무원은 거만하게 응대했다. 그리고 젊은이는 그 공무원이 방금 자신이 건넨 명함을 반으로 접어 눈앞에서 이쑤시개로 사용하는 걸 봐야 했다. 그는 얼마 후 건설회사를 그만두고 안정된 은행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제 곧 지방행정조직과 공기업 등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이 시작될 모양이다. 분명히 우리 공공부문에는 서비스 정신이 바닥나 기업이나 국민의 경제활동에 보탬이 되지 못하는 공무원이 있다. 또 일부 공기업은 독점적인 지위에 안주하면서 본연의 서비스를 뒷전으로 제쳐둔 채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경영을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가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면 이런 폐해가 사라져 공공부문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지고 재정 지출이 줄며 서비스 수요자인 국민의 후생도 증가할 것이다.

그렇지만 구조조정이 단지 인력감축에만 국한된다면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 민간부문은 거대한 구조조정의 물결을 헤쳐 왔다. 그 결과 외형적으로 기업의 체질이 강화돼 수익성은 좋아졌으나 심각한 후유증이 남았다. 직장인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는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된 뒤 우리 젊은이들에게 모험심이 사라지고 말았다. 우수한 젊은이들은 평생 안정된 수입이 보장되는 로스쿨이나 의대로 가려고 한다. 모험과 창의성이 필요한 기업가 정신이 퇴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주영, 이병철, 안철수씨 같은 혁신적인 기업인들이 나오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구조조정은 개별기업의 수익성을 개선시켰으나 국민경제 전체의 성장잠재력이 낮아지는 ‘합성의 오류’ 현상을 만들어 냈다.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은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공기업 부문에서만 수만명의 인력이 감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인력 감축은 단기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공공부문 인력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중산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1분기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도시가구 상위 20%의 월평균 소득은 하위 20%의 8.41배에 달한다. 2003년 이후 최대의 격차다. 일반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비성향은 고소득층보다 크다고 한다. 양극화가 내수침체의 주요인이 되는 이유다. 설사 구조조정이 소수의 인력 감축으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전체 공공부문 종사자의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다시 중산층 전체의 소비심리에 악영향을 미쳐 경기 냉각을 부채질하게 된다.

인력 감축이 사회적 비용을 낳은 이유는 우리 문화와 경제 구조의 특성 탓이다. 실용성과 개인주의가 강한 미국이나 서유럽과는 달리 명분을 중시하는 유교적 전통으로 인해 공공부문 종사자들은 블루칼라 노동자로 쉽게 전환되지 못한다. 또 경제 규모가 작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낮아 특정 분야에서 한꺼번에 구조조정을 당하면 탈락자들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불안심리가 실제 이상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은 중요한 개혁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으로 얻는 생산성·효율성의 제고 이면에는 사회적 비용이 존재한다. 단기적으로 중산층 약화와 소비심리 위축 현상이 나타나고, 장기적으로 국민의 리스크 회피와 안정 지향에 따라 사회적 역동성이 저하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소중한 인적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아 성장잠재력이 떨어질 것이다. 구조조정은 공공부문의 중복기능 조정, 서비스 질 제고, 새로운 서비스 창출 등 보다 적극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인력감축 중심의 구조조정은 우리 경제에 결코 보약이 될 수 없다.

박번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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