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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국내 납치엔 뒷짐지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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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0-04 13:53:44 수정 : 2010-10-04 13: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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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납치, 대북정책 최우선 순위
종교인 국내 납치에도 관심 가져야
2002년 9월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뜻밖의 사과를 받았다. 김 위원장이 “특수기관 일부가 망동주의, 영웅주의로 나가면서 이러저러한 일을 해왔다고 생각한다”고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한 것이다. 일본의 경제지원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지만 북한 최고지도자의 이런 행보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안경업 논설위원
북한 공작원에 의한 일본인 납치사건은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이후 일본에서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북한 측의 해명과 달리 납치 피해자가 더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북한은 1970∼80년대 납치한 일본인이 모두 13명이며 이 가운데 8명은 사망했고 생존자 5명은 2002년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본은 납치 피해자가 17명이고 북측이 주장하는 사망자 숫자도 믿을 수 없다며 이들의 소재를 재조사해 귀국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져보면 확인되지 않은 피랍자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일본 정부와 시민단체가 이들을 구해내기 위해 기울이는 관심과 노력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각별하다. 역대 정부는 납치문제 해결 없이는 북일 수교도 경제적 지원도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기구인 6자회담에까지 이 문제를 연계시키기도 한다. 북핵문제 해결에 납치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지만 개의치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간단체들도 한국과 미국 언론매체에 납치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광고를 싣고, 휴전선 너머로 대북 전단을 날려 보내기까지 한다.

일본 정부와 민간의 이런 모습은 일본이 어엿한 선진 사회임을 보여준다 하겠다. 납치 피해를 직접 당하는 입장에서 일본이 이 문제를 대북 관계에서 최우선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주요 언론 매체들이 잇달아 보도하고 있는 일본 통일교도 납치·감금 사건은 과연 일본이 성숙한 나라인가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보도에 따르면 1966년 첫 납치 사례가 발생한 이후 44년간 일본에서 납치·감금된 피해자가 무려 4300여명에 이른다. 첫 납치가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지만 그간의 피해자 수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것이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지난 8년간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사건 해결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자국 내에서 자행된 수많은 반인권적 범죄는 외면해온 것으로 드러난 셈이 됐다.

실제 사례를 들여다보면 선진국이라는 일본에서 일어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를 동원해 여성 신도를 납치한 뒤 1년 3개월이나 감금해놓고 결국 신앙을 포기토록 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더구나 과거 전체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난 게 아닌가 하는 섬뜩한 사례도 있다. 12년 5개월간 납치·감금돼 우여곡절을 겪다가 가까스로 풀려난 한 남성 피해자의 사진 속 모습은 나란히 실린 부헨발트 나치 강제수용소 노동자들과 전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피골만 앙상하다.

이런 만행은 강제 개종 전문가를 자처하는 과격파 기독교 목사와 좌익 변호사들이 피해자 가족을 끌어들여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로 몰아가기 때문에 경찰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문제의 배경엔 종교적 발원지가 일본 식민지였던 한국이라는 점, 그리고 빠른 교세 확장과 냉전 시절 승공운동 등에 대한 일본 사회의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납치·감금과 강제개종이 횡행하는 것은 논란과 갈등의 소지가 있는 종교나 이념, 국가 이익의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사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사건도 한반도의 남북 대치 상황과 무관치 않다. 북한은 6·25 직후 직접 양성한 대남 공작원을 파견했지만 남한의 경계 강화로 잠입이 어려워지자 재일 조선인을 보냈고, 그 후엔 일본인을 활용키로 하면서 납치문제가 발생했다.

일본 내 납치 피해자들이 종교나 이념에 앞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내세우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사실 일본 정부와 민간 단체들도 그간 북한에 대해 일본인 납치는 중대한 인권 침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 만큼 일본과 북한의 납치 문제가 이념과 종교, 국가를 초월해 조속히 해결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안경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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