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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버지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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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7-15 21:54:20 수정 : 2011-07-15 21: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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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자녀교육 방관자 신세
올여름 아이와 독서 삼매경을
한여름 햇볕보다 더 정치가 뜨거워지고 있다. 숨은 용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때를 재는 중이다. 바다 건너 미국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소속의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을 향한 걸음을 떼기 시작했고, 공화당 소속 후보들 역시 당내 경선가도에 올랐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 눈길을 유독 끈 것은 미국에서 최근 화제로 떠오른 아버지 오바마의 다짐이다.

장은수 민음사대표·문학평론가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일을 해야 할 개인적 책무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비디오 게임을 끄고 책을 읽도록 격려하는 것, 옳고 그름의 차이를 가르치는 것,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우리가 대우받고 싶어 하는 대로 남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알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 인생에 깊은 관심을 품고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 말입니다.”

이것이 오바마가 꿈꾸는 세상이다. 우리는 이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꿈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 아이들이 책을 읽도록 격려하고, 옳음과 그름의 차이를 분별하게 가르치며, 남을 존중하는 삶을 살도록 모범을 보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과 같은 학력 강요 사회에서는 아이에게 꼭 필요한 책을 읽히는 것조차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 학원 공부를 하는 대신에 책을 읽도록 격려했다면 그는 아이의 미래를 망치려 한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시쳇말에 아이의 학력은 할아버지의 경제력, 어머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에 달려 있다 한다. 이 말이 일말의 현실을 반영한다면, 한국의 자녀 교육은 아버지의 방조, 아니 아버지의 철저한 배제 위에 구축돼 있다는 뜻이다. 사회의 가치 축을 대변하는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음으로써 학력 강요 사회는 아이들로 하여금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공부하도록 시키는 게 아니라 성적 그 자체만을 추구하기 위해 가치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는 걸 당연시하게 만든다.

현실은 오직 냉혹하지만 아버지는 아이들이 그에 굴복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꿈과 패기와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잘못된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있도록 이끌고, 삶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인가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꿈을 빼앗긴 아이들은 사소한 장애물에도 자꾸 넘어지고, 희망을 박탈당한 없는 아이들은 엎어지면 좀처럼 일어서지 못한다.

필자의 친구 중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 학교 때 공부는 시원치 않았지만 책만은 정말 열심히 읽던 친구였다. 현재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성공한 삶을 사는 그는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성적이 아니라 독서를 통한 폭넓은 체험이었다고 고백하곤 했다. 그런데 그의 아이가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면서 불행해하는 기미가 보이자 과감하게 홈스쿨링을 택했다. 사교육 학원에 보내는 대신에 그 돈을 모아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가고, 평소 지론대로 책 읽기를 중심으로 한 학습을 실천하는 등 남들과 다른 길로 아이를 기르고 있는 것이다. 이전보다 아이가 더 기뻐하고 가정이 더 평화로워진 것은 물론이다.

다산 정약용은 이역만리 떨어진 강진 유배지의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도 두 아들에게 시시때때로 편지를 보내 훈계했는데, 이때 그가 강조한 것은 거개가 다 책 읽기였다. 독서를 통해 생각을 지혜롭게 하고 품성을 훈련하며 행실을 바로잡을 것을 권면한 것이다. 이처럼 책은 아이가 인생을 더 가치 있게 살아가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아버지들이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동반자이다. 오늘 당신이 아이에게 쥐어 준 한 권의 책이 아이의 인생을 바꿀 것이다. 올여름 아이와 함께 독서삼매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장은수 민음사대표·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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