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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기적을 만날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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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3-16 20:24:35 수정 : 2012-03-16 20: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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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 잡듯 복권에 빠진 세태
땀없는 요행수는 허망한 결과뿐
우리 집 근처에는 로또 1등이 15번이나 나왔다는 복권 명당이 있다. 주말이면 많은 차가 겹겹이 그 앞에 주차돼 근처를 지나다니기 힘들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복권 명당이라는 것을 믿고 그 집에서 로또를 사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일확천금을 아무런 고통도 없이 거저 얻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로또에서 모인 돈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을 위해 로또를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또를 사는 사람은 수천만 분의 1이라는 확률이 바로 내게 떨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걸고 있다. 돈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와 설움은 로또 한 장만 당첨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는 일이 맘대로 되지 않거나, 경제가 어려울수록 복권에 더 매달린다.

복권 이야기를 다룬 영화도 많다. 올해 초 개봉된 ‘네버 엔딩 스토리’는 죽음을 앞둔 남녀의 데이트 모습을 그린다. 동생집에서 빌붙어 살며 동생네 태권도장 운전을 하는 주인공은 늘 로또를 산다. 그는 자신이 진 빚을 한 번에 갚고 동생집에서 떠나는 꿈을 꾸며 매주 복권을 산다. 심지어 그는 접촉사고가 났을 때, 현금으로 해결할 돈이 부족하자 자신이 샀던 복권을 준다. 그 복권이 당첨되면 차 수리비가 문제가 아니라며 내밀자 복권을 받는 사람이 처음에는 당황해하지만 마치 당첨이 확실한 것처럼 기분 좋게 복권을 받아든다.

사실 복권에 당첨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상상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복권 같은 꿈은 한편으로는 허망하기도 하다. 행운이 허망하게 지나가 버리는 것을 그린 영화도 많다. ‘마파도’는 160억원이라는 당첨금이 걸린 복권을 가지고 사라져버린 애인을 찾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러나 애인이 배를 타고 도망가던 중 손에 들고 있던 복권은 때마침 날아온 갈매기가 물어가고, 그 복권은 바람에 날려 마파도 호박밭에 떨어진다. 마파도에는 대마가 많아서 복권을 주워든 마을 할머니는 그 위에 대마를 올려놓고 담배로 만들어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주인공에게 준다. 주인공은 그렇게 찾아 헤매던 복권을 같이 갔던 경찰과 다정하게 나눠 피워 버린다.

일본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에서는 세 명의 홈리스가 유괴된 아기의 부모를 찾아주는 해프닝을 그린다. 주인공 중 한 명이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노인을 구해주는데, 노인은 조롱박 모양의 주머니를 주인공에게 주고는 사망해 버린다. 홈리스인 주인공은 노인이 준 주머니 속을 뒤져보지도 않고, 당첨 번호가 1111이라는 복권 당첨 장면이 다음에 나온다.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주인공은 윗도리 주머니 속 담배를 꺼내달라고 또 다른 주인공에게 부탁하고, 담배를 꺼낼 때 함께 들어 있던 조롱박 모양 주머니가 바닥에 떨어진다. 주머니 속에는 당첨된 복권이 들어 있었지만 주인공들 그 누구도 복권을 보지 못하는 것이 결말이다.

행운은 그렇게 덧없이 우리 곁을 스쳐가는지도 모른다. 복권이나 도박을 하는 사람의 심리적 오류를 ‘도박사의 오류’라고 한다. 여태 잃었으니 이제 따겠지, 여지껏 당첨되지 않았으니 이젠 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당첨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 당첨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점점 불어나는 이자를 갚을 길이 묘연한 요즘 상황에서는 요행을 바라는 사행심을 갖는 분위기가 가중된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그 그림자도 진하듯 요행은 허망한 결과를 동반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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