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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태백중학생들 "키도 나이도 속였어"

입력 : 2011-06-01 19:37:16 수정 : 2011-06-01 19: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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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학도병 자원입대 태백중학교 제58회 호국학도병 추모제
"조국을 구하겠다는 애국심과 먼저 산화한 친구 얼굴을 떠올리며 주저 없이 포화 속으로 뛰어들었어"

1일 강원 태백시 장성동 태백중학교 교정에서 열린 제58회 태백중 호국학도병 추모제에 참석한 이영도(78) 옹은 중학생의 몸으로 펜 대신 총을 잡고 전장에 뛰어든 당시 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태백중 학생들이 참전을 결심한 것은 6·25전쟁에 중공군이 개입한 1951년 1월 4일.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고 판단한 당시 15∼17세의 어린 학생 127명은 학도병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고 6일 후인 1951년 1월 9일 새벽 모두가 교정(현 태백초등학교)에 모였다.

지금은 모두가 팔순을 바라보는 학도병들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정말 추웠다"라며 그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솜바지에 개털 모자, 그리고 부모님들이 정성으로 준비해준 옥수수 쌀 전대를 허리춤에 찬 학도병들은 보병 제3사단 제23연대가 주둔한 경북 봉화 춘양을 향해 3일 밤낮을 걸었다.

당시 연대장은 "나이가 어려 받아줄 수가 없다"라며 입대를 거절했으나 학도병들은 "싸우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김재필(79) 옹은 "키도 나이도 속였어. 아니 우리들의 애국심에 속아 준 거지. 전 교생이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한 것은 전사에 없는 일"이라며 학도병 입대를 자랑스럽게 말했다.

1951년 1월 14일 학도병 1개 중대로 편성된 이들은 경북 봉화 법전초등학교에서 기초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훈련시작 8일 만에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태백중 학도병들은 춘양을 출발, 영월 녹전에서 첫 전투에 참가했으며 1951년 1월 26일 첫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어 같은 해 5월 16일에는 인제 상답지구에서 13시간 동안 치열한 전투로 중공군에 포위된 3군단의 후퇴로를 확보하는 전공을 올렸다.

군번도 없이 최전선에서 싸우던 학도병들은 1951년 6월 1일 양양 송림에서 현역 입대식을 하고 군번을 받았다.

학도병이 아닌 현역이 된 이들 앞에는 간성 쑥고개 전투, 양구 가칠봉 피의능선 전투 등 피 비린내 나는 전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백중 학도병은 양구 백암산에서 휴전을 맞을 때까지 당시 17세이던 손길상 일등병 등 18명의 젊음을 조국에 바쳤다.

추무환(79) 옹은 "현리 후퇴작전에서는 마지막까지 남아 1개 사단의 철수를 돕는 등 학도중대는 수색과 대사격 중대로써 언제나 선봉에 서서 싸웠다"라고 말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들은 화랑도의 '화(花)' 자와 태백의 '백(白)' 자를 따서 화백회(태백의 화랑)를 결성했다.

이후 장렬하게 산화한 영령을 달래고 태백중 학도병들의 애국심과 충정이 후세들에게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며 매년 6월 1일 태백중 충혼탑에서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한편, 태백중은 군 복무로 졸업하지 못한 학도병들에게 1997년 명예졸업장을 수여했으며 2005년에는 전몰 학도병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전적비가 강원 철원군 서면 자등리 3사단 교육관 앞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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