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살인마야. 아이들은 어떡할래, 네가 살려내라…”
24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한 골목에서는 20일 전자발찌를 찬 40대 남성이 30대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이 실시됐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관심을 방증하는 듯 주변에는 시민과 유족, 취재진 수십명이 몰려들었다.
오전 10시5분쯤 피의자 서모(42)씨가 현장에 나타났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큼지막한 희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서씨가 호송차에서 내리자 주민들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마스크를 벗겨라”, “얼굴을 공개해라”, “사형시켜라” 하는 고함이 이어졌다.
서울 여의도 칼부림 사건 피의자 김모씨(왼쪽 사진)가 24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신정동 남부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서 전자발찌를 찬 채 성폭행을 하려다 주부를 살해한 서모씨도 이날 현장검증에서 범행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서씨는 사건 현장에서 100m가량 떨어진 인근 공원에서 피해자 집까지 걸어오는 모습을 재연한 뒤 집 앞에서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한 경찰의 질문에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유가족에게 할 말이 있느냐. 왜 그랬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는 말만 반복했다.
피해자 집 안에서 진행된 현장 검증은 40여분간 비공개로 진행됐다. 창문으로 서씨의 모습이 비칠 때마다 주민들이 술렁거렸다. 닫힌 현관문이 열리고 도망치려는 피해자를 뒤에서 흉기로 찌르는 모습을 재연할 때는 주민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서씨는 피해자 이씨가 아이들을 유치원 버스를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집 안으로 들어가 안방에서 돌아온 이씨를 성폭행하려다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사건이 있던 날 현장을 지나다 피해자를 봤다는 주민 권모(59·여)씨는 “(피해자가) 얼굴을 얼마나 맞았는지 형체도 알 수 없게 퉁퉁 부어 있었고, 다리 쪽으로는 피가 흘러 내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죽지 않기를 바랐는데 결국 죽었다고 해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면서 “남은 아이들은 어떡하느냐”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주민 최모(58)씨는 “국민 세금으로 전자발찌 달아주면 뭐 하냐”며 “저런 살인범은 감옥에서 내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의 동생 이모(33)씨는 “다음달 1일로 예정된 결혼 준비 때문에 지난주 누나와 통화했다가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전화를 끊었다”며 “서운하게 해서 마음이 너무 아픈데, 그게 마지막 통화가 됐다”며 울먹였다.
현장 검증이 끝난 뒤 피해자 집을 찾아가 현관문을 열자 부부와 아들, 딸이 함께 촬영한 가족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사진이 담긴 액자가 유난히 많았다. 식탁 의자에는 그날 이씨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빨간 앞치마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고, 가스레인지 위에는 차갑게 식어버린 국 냄비가 돌아오지 못할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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