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이처럼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를 만난 것은. 시사회를 다녀온 날 밤과 다음날,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도 가슴속 한자리를 차지한 여운은 그대로다. ‘해피엔드’ ‘모던보이’ ‘사랑니’ 등을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마침내 자신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섬세한’ 명작 한 편을 빚어낸 뒤 당당하게 ‘정지우표 영화’라는 딱지를 떡하니 붙여 세상에 내놓았다. 박해일 김무열 김고은 주연 영화 ‘은교’(정지우필름 제작)는 문단의 존경을 받는 70대 시인 이적요(박해일)와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질투한 30대 제자 서지우(김무열) 사이에 싱그러운 젊음과 앙증맞으면서도 관능미를 지닌 여고생 한은교(김고은)가 나타나면서 이적요에겐 청춘에 대한 욕망을, 서지우에게는 열등감을 불러일으켜 갈등을 빚는 치정 멜로다. 작가 박범신의 갈망 3부작 가운데 하나인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이적요의 집, 풀숲 우거진 정원을 배경으로 현관 앞 안락의자에 ‘하얀 것’이 누워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 새벽 이슬을 먹은 풀처럼 촉촉하고 싱그럽기 그지없다. 안으로 들어서던 이적요는 이를 본 순간 죽어있던, 잊혀졌던 젊음이 자신의 몸 안에서 다시 부활함을 느낀다. 가슴속에 찾아 든 봄. 청춘이다.
흔들의자에 기대어 자고 있던 한은교는 인기척에 눈을 뜨면서 묻는다. “누구세요?” 오히려 머쓱해진 이적요는 자신의 집에 무단침입한 은교에게 따지기보다는 “그러는 넌 누구냐?”고 물으며 마음을 건넨다. 은교는 “아, 할아부지 집이에요? 지나가다가요, 이 의자에 앉아보고 싶어서요. 저기 사다리 타고 들어왔어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라며 사다리를 통해 풀숲 우거진 정원 담장을 넘어 총총 사라진다.
사랑은 70대 노인도 위험을 무릅쓰고 암벽을 타게 만든다. 서지우의 장난 탓에 은교가 엄마로부터 선물받은 손거울을 떨어뜨리자 이적요가 암벽 중턱에 걸린 거울을 주워온다. 이는 은교를 향한 맹목적 감정과 서지우에 대한 경쟁 심리를 동시에 내포한다. 서로를 견제하는 적요와 지우 사제 간의 신경전, 그 진지함은 예상 밖의 웃음을 낳으며 극에 활력을 더한다.
소설 ‘은교’를 통해 자신을 아름답게 그려준 사람이 서지우라고 착각한 은교는 외로움에 허덕이던 마음을 서지우로 달래보려 하지만 정신적 공허함은 채워질 리 없고 이내 이적요의 진심을 알게 된다. 감독이 특별한 애정을 쏟은 종반부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적요를 향해 고마움을 고백하는 은교의 모습이다. 담담하고 정적인 엔딩이지만 임팩트가 강하다. 은교는 벽을 바라보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이적요를 뒤에서 안으며 “은교를 예쁘게 써줘서 고마워요. 나는요, 내가 그렇게 예쁜 아이인 줄 몰랐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멍청이처럼 굴었어요”라며 고해성사하듯 용서를 구한다. 은교가 떠나자 이적요는 주름과 검버섯으로 뒤덮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잘가라, 은교야”라는 독백으로 마지막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다.
은교는 이적요 집 거실 유리창 닦기를 좋아한다. 특히 유리 윗부분을 닦을 때 교복 상의와 치마 사이로 뽀얀 허리가 드러나면 뒤에서 이를 흘금 훔쳐보던 70세 시성은 물론 관객들조차 넋을 빼앗기고 만다. 정 감독의 영상기법이 한몫을 해냈다. 역광을 이용해 이러한 육체적 욕망들을 빛나고 순결하게 표현했다. 특히 은교의 아름다운 라인은 강렬한 빛의 이동과 함께 묘사된다.
먼지가 뿌옇게 쌓인 유리창은 이적요의 늙은 육신을 나타낸다. 더러워진 유리창을 젊은 은교가 닦자 새것처럼 투명해진다. 은교가 이적요에게 “할아부지, 저는 유리창 닦는 게 정말 좋아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마치 “할아부지, 제가 할아버지의 늙음을 지우고 청춘을 돌려드릴게요”로 들리는 것 같다.
유리창은 은교가 지금까지 접하지 않았던 세계와 소통하는 수단의 하나다. 영화에는 이적요와 은교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나오는 장면이 많다. 서로가 넘지 못하는 경계의 의미를 유리창에 부여한 것이다. 정 감독은 “은교가 그 유리창을 닦으면서 이적요의 세계로 넘어가는 소통을 보여주는 설정”이라고 설명한다.
은교가 이적요의 가슴에 직접 헤나를 그려주는 장면에서 적요는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자신과 은교의 정사를 상상한다. 몽환적인 영상으로 보여지는 이들의 정사신은 ‘젊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는 말의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이적요가 은교와의 작은 스킨십에서 느꼈을 ‘젊음’의 온기와 냄새. 한낮 꿈처럼 지나가버린, 잠시지만 자신의 젊을 적 제일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돌아갔었으리라. 반면 적나라한 격정을 그대로 담은 은교와 서지우의 베드신은 말초적 감각에 앞서 관객의 뇌리를 자극할 뿐이다. 이적요의 은교에 대한 상상 속 섹스는 사랑이지만, 서지우가 은교와 벌이는 현실 속 섹스는 적요의 껍데기로서 그야말로 ‘외로워서’ 하는 섹스이기 때문이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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