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교’(감독 정지우)의 주연인 김고은(20·사진)은 포장을 갓 벗긴 인형 같았다. 7월 생일을 앞둔 만 스무 살의 소녀는 나이답게 날씬한 꽃사슴처럼 움직였고, 나이답지 않게 고혹적인 눈매로 상대를 응시한다. 극중 70대의 대문호를 매혹한 주인공 은교가 그런 것처럼.
영화 은교의 시사회 전, 영화의 편집본을 본 김고은은 덜컥 겁을 먹었다. 작품세계 속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본 소녀는 수일 동안 두려움에 휩싸였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수차례 반문하던 김고은은 ‘기술 시사회’에 무리해서 참석했다. 다시 한 번 확인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교가 된 나와 처음 대면한 순간이었어요. 딱히 어떤 이유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갑자기 무서워졌어요. 하지만 기술 시사에서 완성된 작품을 보고 불안했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있고, 응어리가 맺히고 풀어지는 과정을 보니 오히려 행복해지더라고요.”
은교는 17세의 싱그러운 젊음과 순백의 천진난만함, 역설적인 관능으로 위대한 노시인의 세계를 무너뜨린다. 소설가 박범신의 동명 원작 소설에 묘사된 이 위험한 소녀는 본격적인 연기 경험이 없는 여배우의 데뷔작으로 선택하기에 위험 부담이 컸다. 그러나 김고은은 300명의 은교 후보들을 제쳤고, 파격 노출 등으로 선배 여배우들조차 주저했던 은교가 됐다.
“제가 은교가 되려 했을 때, 저와 친하지 않은 몇몇 친구들은 ‘데뷔작인데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이런 연기로 시작한 여배우들이 잘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소리도 들었죠. 반면 부모님과 저를 잘 아는 친구들은 결코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어요. 제가 얼마나 고민하고, 얼마나 신중하게 선택한 작품인지 잘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은교는 결코 만만한 작품이 아니었다. 주인공 은교가 되기 위해 운동과 식단 조절을 병행하며 몸매를 관리한 김고은은 촬영을 마친 후 4kg 이상 체중이 줄었다. 또 은교 안에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를 연상하는 시선도 있었다. 이런 반응에는 유혹하는 듯 묘한 자세를 취한 은교의 캐릭터 포스터도 한몫했다.
“롤리타는 아직 보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은교는 롤리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은교의 캐릭터 포스터를 찍을 때 저는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을 지으려 했어요. 실제로 은교는 그런 아이거든요. 교복을 입고 창문을 닦으면서 속살이 드러나도, 그런 모습에서 남자들이 성적 호감을 갖게 된다는 생각조차 못하죠. 그녀는 무지할 정도로 순수하거든요.”
김고은은 은교의 VIP 시사회에 부모님과 정말 친한 친구 몇 명만을 초대했다. 영화 관람을 마친 부모님은 어린 딸을 품에 안고 ‘좋은 작품 속에서 잘해냈다’고 칭찬했다. 친구들은 영화를 찍으며 힘들다는 불평조차 없던 김고은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김고은은 “친구들이 내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친구들을 달래야 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여배우를 꿈꾸던 학생이 첫 발을 내디딘 여배우가 됐다는 말을 들으면 아직도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제가 연기를 잘했는지 못했는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고요. 하지만 은교가 된 자신에 대해 딱 한 가지를 칭찬해주고 싶어요. 은교를 위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면의 에너지를 유지했다는 점에 대해서요. 저 그래도 되겠죠?”(웃음)
박민경 세계닷컴 기자 minkyung@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