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 사람의 삶]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김종기 명예이사장

관련이슈 이 사람의 삶

입력 : 2009-08-23 20:38:57 수정 : 2009-08-23 20:38:5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학교폭력과 청소년문제 국제 네트워킹 강화 할 것”
“학교 폭력은 전 세계 공통의 고민거리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유엔의 특별지위를 획득한 것도 그래서 더 의미가 큰 것입니다.” 지난 20일 김종기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명예이사장(62)은 최근 유엔으로부터 특정분야 협의 지위를 인정받은 것에 대해 “청예단 활동의 전문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기쁘지만 학교폭력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공감이기도 해 안타깝다”고 소감을 밝혔다. 청예단은 지난 8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정분야 협의 지위를 획득했다. 우리나라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등이 이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학교폭력 예방 특화 단체가 이 같은 지위를 획득한 것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다는 평가다. 본지는 2007년 3월 탐사보도 ‘학교 가기 싫어요’를 청예단과 공동기획 보도한 바 있다. 김 이사장은 인터뷰에 거의 응하지 않지만 이런 인연과 이번 지위 획득을 계기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김종기 청예단 명예이사장은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학교폭력은 전세계의 고민”이라며 “이번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정분야 협의지위 획득을 계기로 학교폭력에 대한 선진국의 경험과 노하우를 폭넓게 교류할수 있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이종덕 기자
김 이사장은 “학교폭력 및 청소년 문제에 대한 국제 네트워킹을 강화하고 싶었다”며 “학교폭력 문제에 대한 우리 경험과 선진국 노하우를 진지하게 교류하고 배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준비부터 최종 승인까지 2년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서류 준비에만 꼬박 1년이 걸렸다. 심사에 또 9개월이 걸렸다. 지위 획득에 따라 청예단은 앞으로 경제사회이사회에 대표를 지정해 파견할 수 있고 공개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관련 현안에 대한 성명서를 내고 발언할 수도 있다.

김 이사장은 1995년 청예단을 설립했다. 그 전까지 국내 굴지의 대기업 간부이자 행복한 가장이었던 김 이사장은 하루아침에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됐다.

1995년 초여름. 공부와 운동을 모두 좋아하던 아들이 아파트 5층에서 몸을 던졌다. 중국 출장 중이었던 김 이사장은 날벼락 같은 소식에 부랴부랴 귀국했다. 병원에 싸늘하게 누워있던 아들의 온몸은 멍투성이였다. 학교 폭력배들에게 자주 폭행당하고 돈과 물건도 빼앗겼다는 증언을 들었다.

매일 매일 죽지 못해 살았던 아들은 목숨을 버리기 전 노트, 메모장 등 신변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나중에 김 이사장이 발견한 아들 방 유리창엔 ‘이젠 쉬고 싶다’는 낙서가 적혀 있었다.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미안함으로 가슴이 찢어졌다.

김 이사장은 “아들이 살아있다면 올해 31살”이라며 “이 일로 나 스스로 죄 갚음을 한다고 생각한다. 지켜주지 못한 아들에게 용서를 바라며 숙명으로 알고 일을 한다”고 말했다.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렇지만 아직도 내 가슴엔 돌덩어리, 응어리가 있다”고 그는 토로했다.

아들이 저세상으로 떠난 뒤 학교를 찾아갔다. 그러나 학교 측은 “무슨 말이냐.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고 전면 부인했다. 학교, 교사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 그는 직접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대표이사를 맡으라는 당시 회사의 제의도 뿌리친 채 혼자 힘으로 사무실을 차렸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더구나 당시 교육계에서는 학교폭력이란 말도 일종의 ‘금기’였다. 김 이사장은 애초 ‘학교폭력예방재단’이란 이름으로 등록하고 싶었지만 여러 차례 거부당한 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라는 이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교육계에서 학교폭력이란 말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은 2004년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부터”라며 “그런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학교폭력이 공론화되고 여러 대책이 마련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도 기억에 남는다. 1997년 김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으로 청예단 사무실을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은 “청예단 활동이 너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면서 “학교폭력은 개인의 아픔이 아니고 국가가 나서야 할 일”이라고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1시간 예정이던 방문은 40여분 이상 더 이어졌고, 이후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문화관광부 소속이었던 청소년위원회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격상시키는 등 실질적인 조치를 해줬다. 김 이사장은 “그런 분이 돌아가셨다 해서 마음이 착잡하다”면서 “국가 전체로 보면 학교폭력 문제는 작은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김 전 대통령은 큰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요즘은 학교폭력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질이 나빠져 오히려 걱정이다. 김 이사장은 “최근 들어 학교폭력 가해 정도가 심해지고, 저연령화되고 있다”면서 “특히 여학생은 성폭행이 동반되는 사례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에도 한 가해 여학생이 가해자들 사이에서 왕따당한 끝에 남학생들로부터 집단 성폭행까지 당한 뒤 정신질환을 일으킨 사례가 보고됐다.

김 이사장은 “청소년 성의식이 극도로 문란해져 걱정”이라면서 “특히 여학생들은 집요하게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특징을 보여 부모나 학교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뒤 김 이사장은 주로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다른 단체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 사회에선 아직 시민단체가 소신껏 일할 충분한 재정 확보가 요원한 일이다.

그래서 김 이사장에겐 ‘월드비전’이나 ‘사랑의 전화’ 같이 안정적인 후원이 이어지는 단체가 그저 부럽다. 청예단 설립 이후 한번도 직원들 월급을 거른 적이 없지만 간부들은 몇 차례 월급을 제때 지급하지 못한 위기도 있었다. 그는 “청예단이 먼저 자립해야 안정적으로 학교폭력 예방 및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할 수 있다”며 “국민의 80%가 소득의 2∼3%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선진화된 사회가 올 것이라 기대한다”고 희망했다.

아들 이름을 딴 장학회도 멈출 수 없는 일이다. ‘대현장학회’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매달 10만원씩 지원한다. 단순히 돈을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전담 멘토가 따라붙고, 분기에 한 번씩 함께 모여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용기를 얻는다. 그런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갔다는 편지를 보내오면 마치 아들이 살아온 것 같은 기쁨을 느낀다.

내년은 청예단 설립 15주년이다. 새로운 발전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란다. 김 이사장은 “내년부터 청예단 활동이 한 단계 성숙하고 전문화된 단계로 나가야 한다”면서 “다양한 청소년 문화욕구 충족과 안전, 평화, 인권 등을 위해서 아직 할 일이 많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소외받고 상처받기 쉬운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청소년 대상 케이블방송 진출 등을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일을 벌일 수 있는 가장 큰 버팀목은 그를 믿고, 또 그가 믿는 젊고 때묻지 않은 직원들이란다. 그는 “우리 직원들은 모두 양질의 사람들”이라면서 “이렇게 전문성과 열정을 지닌 이들이 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이라고 칭찬했다.

김 이사장에게 청예단 활동은 아들의 생명과 바꾼 소중한 일이다. 김 이사장은 “아들이 죽었던 48세 이후 내 인생은 청예단으로 다시 시작됐다”면서 “일은 사표 쓰면 그만이지만 청예단은 내 일생을 건 문제고, 나는 이 일로 학교폭력으로부터 자녀를 지키기 못한 이 땅의 피해자 부모의 속죄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9월 초 휴가를 갈 예정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매년 아들의 유골을 뿌린 속초 앞바다를 찾는다. 아들을 화장한 뒤 가까운 곳에 유골을 뿌리면 마음 약한 아내가 수시로 찾아갈까봐 일부러 먼 속초까지 찾아갔다. 김 이사장은 “속초에 가 묵념하고 작은 꽃다발을 던지며 ‘대현아 이제 편히 쉬어라’고 말한다”면서 “부모는 절대 자식을 보낼 수 없다. 그래서 지금 하는 일 역시 포기할 수 없다”고 다짐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프로필

▲1947년 목포 출생

▲1974년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1985∼1991년 삼성전자 홍콩법인 대표

▲1991년 삼성전자 전략수출담당 임원

▲1992년 신원그룹 기조실장 전무이사

▲1995년 청예단 설립, 이사장 취임

▲2002년 제5회 청소년보호대상 수상, 청예단 명예이사장 취임

▲2009년 8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정분야 협의지위 획득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스테이씨 수민 '하트 장인'
  • 스테이씨 수민 '하트 장인'
  • 스테이씨 윤 '파워풀'
  • 권은비 '반가운 손인사'
  • 이주명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