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시작되는 곳을 아는가?/ 구름이 넘나들며 백록이 목을 축이던/ 한라에 서서/ 멀리 출렁이는 바다가/ 바람을 해맑은 하늘에 마구 뿌려 대는/ 비취빛 사랑은 누구의 숨결인가?/ 하늘과 땅 사이에 온통 피어있는 하얀 눈꽃들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그대와 손을 꼭 잡고/ 순백의 눈꽃 세상에 푸우욱 빠져/ 차가운 바람도, 힘에 겨운 무게도/ 하얀 사랑으로 이겨내는 푸른 나무들처럼/ 다시 태어나/ 겨울 한라산에 매달려 있는 고드름이 되어도 좋고/ 따스한 햇살에 녹아 떨어지는 한 방울 물방울이어도 좋다/ 그대 눈 속에서/ 출렁이는 파도로 하얗게 피어오르는/ 하얀 나비라도 좋고/ 끝도 없이 부딪치는 파도에서 시작되어/ 겨울 한라산 백록을 넘나드는 구름이라도 좋다.” (오석만 시 ‘겨울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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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동산에서 윗세오름으로 이어지는 한라산 등산로. 줄지어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등산객들과 산더미처럼 쌓인 눈, 그리고 오름이 만나 환상적인 모습을 만들어낸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신용만씨 제공> |
제주도는 여느 때 찾아가도 신비스럽다. 겨울 한라산은 더 그렇다. 산 위는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설국’을 이루고, 낮은 곳에선 작은 풀들이 싹이 틔운다. 산에 오르면 겨울이고, 내려오면 벌써 봄이 느껴진다. 이맘때 한라산에 가면 단지 ‘아름답다’는 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환상적인 설경을 만날 수 있다. 눈이 수북이 쌓인 등산길을 걸으면 한라산이 우리나라 유일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한라산에는 어리목·영실·돈내코·성판악·관음사 등 5개 등산 코스가 있다.
이 가운데 영실코스는 가장 짧은 거리인 데다 길이 완만해 가족단위 등산객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해발 1280m 영실휴게소에서 시작하면 윗세오름 대피소까지는 3.7㎞. 등산로에 눈이 수북이 쌓인다 해도 손을 잡고 걷기에는 무리가 없다.
제주의 지명은 아직도 정확히 해석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더더욱 신비감을 더하고 정감이 느껴진다. 영실(靈室)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우리말로 ‘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발길 닿는 곳곳마다 ‘하로산 또(한라산 신)’가 머무는 듯한 신비감이 휘감아 돈다. 눈을 밟는 ‘뽀드득뽀드득’ 하는 소리가 못된 신이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뒤돌아보기가 조금은 무서워진다.
눈을 헤치고 1시간가량 걸으니 거대한 병풍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나선다. 한라산 신들이 왜 여기에 머무는지 알 것 같은 기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코발트빛 하늘과 검은 돌, 그리고 순백의 눈덩이가 어울린 병풍바위 주변은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절경이다. 눈 내린 영실기암은 마치 히말라야 같은 고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검고 날카로운 톱니를 드러낸 것이 경이로운 풍광이다. 수많은 눈보라가 지나간 사이 절벽 위에는 눈으로 처마가 생겨난다. 내린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니 ‘눈 처마’는 점점 길어진다. 설경을 더 가까이서 느끼고 싶어 절벽 끝으로 다가가면 날카로운 얼음이 떨어진다. 겨울산행은 자칫하면 넘어지고 얼음조각에 다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욕심과 만용은 금물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바위봉우리 뒤로 오백나한이 줄지어 서있다.
평지나 다름없는 능선길을 따라가면 숲길이 기다린다. 거리는 짧지만 등산로 곳곳이 빙판이다. 구상나무 군락지대를 지나자 온몸을 완전히 드러낸 고사목이 등산로 주변을 메우고 있다. 눈에 덮여 길을 찾기 어렵다 싶은 곳마다 빨간 줄을 매달아놨다. 등산객을 위한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등산로를 알려주는 생명선과 같은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윗세오름 대피소가 기다린다. 대피소 매점에는 매년 겨울 설원을 즐기려는 사람만큼이나 컵라면 용기가 수북하다. 가족이나 연인들이 호호 불면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는 모습이 정답고 따스하다.
한라산 1700m 고지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산 평원인 선작지왓이다. 제주도 말로 ‘선’은 서있다, ‘지’는 돌, ‘왓’은 밭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작지왓 평원은 ‘작은 돌들이 서 있는 밭, 들판’을 뜻하는 셈이다. 하지만 겨울철이 되면 돌은 보이지 않고 하얀 눈과 세찬 바람뿐이다. 한라산의 바람은 살을 에는 모진 삭풍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해 주는 맑은 바람이다.
하산길은 어리목 코스를 택했다. 불과 30분 만에 만세동산에 다다랐다. 만세동산의 정확한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망동산이라고도 부른다. 명칭은 동산이지만 실상은 원추형 오름이다. 맑은 날 여기서 바라다보는 제주시내 경치가 그만이다. 곧이어 만나는 사제비동산 역시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다. 겨울 한라산은 지금 올라야 제격이다.
제주=류영현 기자 yhryu@segye.com
이 가운데 영실코스는 가장 짧은 거리인 데다 길이 완만해 가족단위 등산객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해발 1280m 영실휴게소에서 시작하면 윗세오름 대피소까지는 3.7㎞. 등산로에 눈이 수북이 쌓인다 해도 손을 잡고 걷기에는 무리가 없다.

제주의 지명은 아직도 정확히 해석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더더욱 신비감을 더하고 정감이 느껴진다. 영실(靈室)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우리말로 ‘신들이 사는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발길 닿는 곳곳마다 ‘하로산 또(한라산 신)’가 머무는 듯한 신비감이 휘감아 돈다. 눈을 밟는 ‘뽀드득뽀드득’ 하는 소리가 못된 신이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뒤돌아보기가 조금은 무서워진다.
눈을 헤치고 1시간가량 걸으니 거대한 병풍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나선다. 한라산 신들이 왜 여기에 머무는지 알 것 같은 기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코발트빛 하늘과 검은 돌, 그리고 순백의 눈덩이가 어울린 병풍바위 주변은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절경이다. 눈 내린 영실기암은 마치 히말라야 같은 고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검고 날카로운 톱니를 드러낸 것이 경이로운 풍광이다. 수많은 눈보라가 지나간 사이 절벽 위에는 눈으로 처마가 생겨난다. 내린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니 ‘눈 처마’는 점점 길어진다. 설경을 더 가까이서 느끼고 싶어 절벽 끝으로 다가가면 날카로운 얼음이 떨어진다. 겨울산행은 자칫하면 넘어지고 얼음조각에 다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욕심과 만용은 금물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바위봉우리 뒤로 오백나한이 줄지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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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위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 터널을 이루고 등산로는 찾기조차 어렵다. |
한라산 1700m 고지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산 평원인 선작지왓이다. 제주도 말로 ‘선’은 서있다, ‘지’는 돌, ‘왓’은 밭을 의미한다. 따라서 선작지왓 평원은 ‘작은 돌들이 서 있는 밭, 들판’을 뜻하는 셈이다. 하지만 겨울철이 되면 돌은 보이지 않고 하얀 눈과 세찬 바람뿐이다. 한라산의 바람은 살을 에는 모진 삭풍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해 주는 맑은 바람이다.
하산길은 어리목 코스를 택했다. 불과 30분 만에 만세동산에 다다랐다. 만세동산의 정확한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망동산이라고도 부른다. 명칭은 동산이지만 실상은 원추형 오름이다. 맑은 날 여기서 바라다보는 제주시내 경치가 그만이다. 곧이어 만나는 사제비동산 역시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다. 겨울 한라산은 지금 올라야 제격이다.
제주=류영현 기자 yhryu@segye.com
■ 여행정보
겨울 한라산은 폭설이 내리거나 한파가 몰아쳐 교통이 통제되고 등산로가 폐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등반에 앞서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나 탐방로별 안내소에 문의해야 한다. 대설 주의보 및 경보 등 기상청 특보가 발효되면 탐방로가 통제된다. 따라서 연락처(지역번호 064)를 사전에 숙지하는 것이 좋다. ▲어리목코스(713-9950∼3):총 6.8㎞ ▲성판악코스(725-9950):총 9.6㎞ ▲영실코스(747-9950):총 5.8㎞ ▲관음사코스(756-9950):총 8.7㎞ ▲돈내코코스(710-6920∼3):총 7㎞
겨울 한라산은 폭설이 내리거나 한파가 몰아쳐 교통이 통제되고 등산로가 폐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등반에 앞서 한라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나 탐방로별 안내소에 문의해야 한다. 대설 주의보 및 경보 등 기상청 특보가 발효되면 탐방로가 통제된다. 따라서 연락처(지역번호 064)를 사전에 숙지하는 것이 좋다. ▲어리목코스(713-9950∼3):총 6.8㎞ ▲성판악코스(725-9950):총 9.6㎞ ▲영실코스(747-9950):총 5.8㎞ ▲관음사코스(756-9950):총 8.7㎞ ▲돈내코코스(710-6920∼3):총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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