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중대과실 정황… 승소 가능성 높아” 정부가 사상 초유의 정전 사태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에게 보상을 하기로 했지만, 보상액에 불만을 품은 소비자들이 한국전력을 상대로 대규모 소송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동안 법원은 정전 피해에 대한 한전의 배상책임 인정에 소극적이었다. 이번 사태의 경우 한전이 정부에 예비전력을 허위로 보고하는 등 명백한 과오를 저지른 만큼 소비자들의 ‘승산’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18일 한전에 따르면 그간 정전 피해를 둘러싼 법정 공방에서 전기공급 계약 체결 때 제시한 ‘전기공급 규정’을 근거로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전기공급 규정은 “부득이 전기공급을 중지하거나 그 사용을 제한할 때 수용자가 받는 손해에 대해 한전은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면책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거의 대부분 사례에서 면책조항을 근거로 삼은 한전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일부 소비자가 “그런 면책조항에 대해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대법원은 1995년 “전기공급 규정의 면책조항은 소비자에게 꼭 설명해야 하는 중요한 약관이 아니다”고 판결했다.
물론 법원이 항상 한전 손만 들어준 것은 아니다. 2002년 전신주 고장으로 전기가 끊어져 비닐하우스에서 기르던 작물이 냉해를 입은 사건에서 대법원은 “한전이 농민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다만 대법원은 한전의 배상책임을 손해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0%로 제한했다.
이번 정전 피해는 종전 사례들과 성격이 크게 다르다. 한전은 기상청의 거듭된 ‘이상고온’ 예보에도 전력수요 증가를 예상하지 못했다. 한전은 예비전력 관리에도 실패해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진 15일 예비전력은 겨우 24만㎾에 불과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6일 한전을 찾아 “자기 마음대로 (전력공급을) 자르고 해도 되는 건가. 국민에 대한 봉사정신이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한 변호사는 “정전 사태가 한전 측의 중대한 과실 탓이라는 점만 법정에서 명확히 입증할 수 있다면 손해배상 판결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장원주 기자 stru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