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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비용 못내" 생떼·"2500억 손실" 엄포에… 두손 든 지자체

입력 : 2011-12-26 23:44:02 수정 : 2011-12-26 23: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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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설자 부담 원칙’ 실종… 편법 관로에 발목 잡힌 행정
지난 15일 찾은 전남 여수 월내동. 바다에 이순신대교가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 채 막바지 상판 설치공사를 남겨 놓고 있다. 지상에서는 대교와 이어질 접속도로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순신대교 건설은 2007년부터 진행 중인 여수국가산업단지 진입도로 개설 공사의 일환(1공구)으로 시작됐다. 내년 5월 여수박람회 주요 교통로와 전남 동부권 대동맥 역할을 하게 된다. 설계 단계에서 접속도로가 들어설 지점 아래에 묻힌 관로는 옮기는 것으로 결정났고 2010년 8월 공사가 시작돼 이달 초 끝났다. 이설된 관은 600m씩 11개(총 6.6㎞) 규모. LG화학 등 기업과 공기업 6곳이 각종 원료, 고압가스, 공업용수, 오·폐수 등의 이송로로 쓴 시설물이다.

취재팀 확인 결과 이 중 LG화학과 대성산업가스, 수자원공사, 환경시설관리공사 4곳의 관로 이설비 98억원을 국고로 보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KT와 대한송유관공사는 자기 부담으로 옮겼다. 도로점용 허가는 일시적인 것이라 허가권자가 이설을 요구하면 자비 부담으로 옮기는 게 원칙이다. 왜 기업이 부담해야 할 돈을 국민 세금으로 보상하게 됐을까.

도로법 제77조(부대 공사의 비용과 시행)는 A공사로 인해 B공사가 수반될 경우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경우 외에는’ A공사 원인자가 B공사 비용을 부담한다고 돼 있다. 아무 조건이 없었다면, 여수산단도로 개설 사업 시행자인 전남도가 관로 이설비까지 부담하는 게 옳다.

하지만 도로 공사는 공공 목적을 위한 것이다. 5년 단위의 도시계획 변경, 국책사업 추진 등으로 인해 온갖 공사가 진행되는데, 매번 국비를 들여 도로 부지 내 민간 시설물을 옮겨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도로법은 ‘특별한 조건’이 있는 경우를 예외로 인정하고 있는데, 각 지자체는 도로점용 허가를 내줄 때 ‘필요시 피허가자 부담으로 원상복구해야 한다’고 못박아 향후 국고 손실을 방지하는 게 원칙이자 상식이다.

여수시도 ‘특별한 조건’, 즉 허가조건에 이런 장치를 마련해 뒀다. 관로 주체 6개사 모두에게 ‘도로 유지·관리상 필요한 때에는 관리청 지시에 의해 피허가자 부담으로 원상복구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에 전남도는 2008년 9월 여수시에 “소유자 부담으로 관로를 이설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고, 여수시는 관로 주체 6개사에 이를 통보했다.

LG화학 등 4개사는 1년간의 공동대응을 통해 이를 무력화했다. 이들은 먼저 “허가를 받은 관리청은 여수시인데 이번 사업은 전남도가 추진하는 만큼 허가 조건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30여년 전 여수시가 내준 허가 문구의 허점도 파고들었다. 법제처로부터 ‘도로 유지·관리상 필요한 경우’라 함은 ‘도로 확장, 개축, 수선 및 유지 등에 한정된다’는 유권해석을 받아내 “이번 사업은 신설 도로를 ‘개설’하는 행위이므로 적용 대상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결국 2009년 9월 국비 보상이 결정됐다. 전남도는 법 취지를 알면서도 기업들의 논리에 너무 쉽게 손을 들어 버렸다. 여수시는 허가 문구를 허술하게 작성해 100억원에 이르는 혈세 낭비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전남 광양∼여수를 잇는 이순신대교의 접속도로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에 GS칼텍스의 원료 이송관로 다발(파이프랙)이 육교 모양으로 버티고 서 있다. 도로를 따라 지하에 편법으로 묻힌 관로를 옮기는 데에도 100억원에 이르는 국고가 낭비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별기획취재팀
다른 지역의 도로점용 허가 담당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황당한 코미디 수준의 일이 벌어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북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방정부는 그보다 높은 단계의 정부, 또 중앙정부로부터 재량권을 위임받아 행정을 펼치는 것”이라며 “관리청과 재량권의 범위를 놓고 행정소송까지 갔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경기도 한 지자체 관계자도 “개인 간에도 소유물을 잠시 쓰게 해준다면 복구 비용은 사용자가 내는 게 상식”이라며 “허가 조건에 도로 공사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논란을 차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작 자기 부담으로 관로를 옮긴 KT 측은 “허가 조건에 따라 이설비를 부담했다”면서 다른 업체 상황에 대해 언급하길 꺼렸다.

이에 대해 전남도는 “중앙정부에 여러 경로로 질의하고 협의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 관계자는 “2012년 4월 말까지 개통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명제가 있다 보니 (당시 담당자가) 소송 등을 검토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희준·신진호·조현일, 여수=류송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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