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산업단지 진입도로 관로 이설 공사에 국고 98억원이 허투루 낭비됐다. 공무원들이 일처리를 단단히 하지 못한 탓이다. 개인 돈이라면 그렇게 쉽게 내주지 않았을 터다. 그런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공무원이 없다. 관련 기관끼리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한 양상이다. 유사 사례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고 지출 과정을 철저하게 검증해서 책임질 건 책임지고 고칠 건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2011년 12월27일자 참고〉
〈2011년 12월27일자 참고〉
10일 각 기관에 따르면 2010년 7월23일 국토해양부는 여수산단 진입도로 관로 이설 공사와 관련, 기획재정부에 사업비 93억원을 추가해 달라는 내용의 ‘총사업비 변경’을 신청했다.
발주처인 전남도가 공사구간 내 관로 이설비를 국고로 보상하기로 결정하고 예산에 반영해 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재정부는 소관 부처의 법 해석과 발주처 설명 등을 참고해 10월8일 증액을 승인했고 전남도는 지난해 말 총 98억원을 기업에 지급했다.
국토부는 당시 ‘매설자(피허가자)가 점용료를 납부했다면 공사 원인자가 이설비(타공사비)를 부담하고, 감면받았다면 매설자가 부담한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도로법 제77조 중에서 단서 문구만을 근거로 한 판단으로, 전체 문구 취지에서 어긋난다. 국토부 해석대로라면 도로 공사로 ‘민간’ 시설물을 옮길 때마다 국가가 비용을 물어줘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국토부는 이설 비용 부담 주체와 관련해 최근까지도 이 해석을 고수했다. 취재팀이 확인한 상당수 지자체도 이 해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근에야 “법 해석이 잘못됐음을 인정한다”면서도 “그러나 국고 환수 등 대책은 최종 판단권자인 전남도 몫”이라고 밝혔다. 재정부 관계자는 “법 해석은 소관 부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사업자인 전남도가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남도, “국토부가 지침을 줘야”
관로를 소유한 LG화학 등 기업들은 애초 법 조문에 주목하지 않았다. 도로관리청(여수시)과 진입도로 사업시행자(전남도)가 다르고, 도로점용 허가조건에 ‘도로유지관리상 필요한 때’라고 돼 있으므로 ‘도로개설’ 행위에 따른 이설 비용은 전남도가 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전문가들은 여수시가 30여년 전 허가 문구를 미흡하게 적시해 빌미를 제공했더라도 전남도가 적극 다퉜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가조건의 취지, 관리청의 범위, 도로유지 관리의 개념 등을 놓고 행정소송까지 제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비슷한 사안에서 지급 기준이 되도록 법원 판례를 받아놓을 필요성도 컸다.
하지만 전남도는 기업 논리를 깨뜨리지 못한 채 국토부 A과에 문구 해석을 의뢰했다. 국토부가 도로법상 원칙일 뿐인, ‘도로공사와 도로관리 개념은 다르다’는 답변을 내놓자 이를 근거로 성급하게 보상을 결정하고 B과와 C팀에 예산 증액을 요청했다. 이를 근거로 전남도 측은 “상급기관에 여러 경로로 질의해 판단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물론 여수시가 정확한 허가 상황을 적극적으로 전남도에 설명하지 않은 탓도 크다.
국토부 측은 “지자체가 처한 상황과 약점을 정확히 설명했더라면 그런 원론적 답변이 나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도로 ‘개설’과 ‘유지·관리’의 개념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에 뭉뚱그려 표현돼 있지만 1961년 도로법이 제정된 이후 유사 분쟁에 대한 판례가 충분히 쌓여 있다”며 “사안별로 판단할 일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사태는 중앙정부와 광역단체, 기초단체가 제각각 ‘헛발질’만 하다가 기업에 당한 꼴이 돼 버렸다.
전남도 관계자는 “여수엑스포 개막이라는 중차대한 행사 전에 개통해야 한다는 생각에 제대로 따져보지 못한 것 같다”면서 “우리가 환수를 스스로 결정하기는 곤란하다. 국토부가 지침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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