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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부모 잃고 8살 때부터 '꽃제비' 생활…"

입력 : 2012-05-24 19:55:29 수정 : 2012-05-24 19: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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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이 미래다] 2부 ‘통일 공포증’을 벗자 ④ 20대 탈북 대학생 눈물의 스토리
“목숨 걸고 찾은 새 삶… 우리를 동반자로 받아들였으면”
“새 삶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었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뭉클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저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23일 서울시내 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탈북대학생 백현성(26·가명)씨는 인천공항 입국장에 들어서던 때를 떠올리며 회상에 잠겼다.

14세에 부모를 여의고 두차례 실패 끝에 북한을 탈출, 하나원 생활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기까지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했다. 함경북도 회령 출신인 백씨는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8살 때부터 ‘꽃제비’ 생활을 했다. 일찍 부모를 잃은 탓에 구걸과 소매치기로 연명하다 국가안전보위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다 중국을 넘나들던 지인의 권유로 탈북을 결행했다.

백씨는 “따뜻하게 맞아준 이곳 사람들이 고맙다가도 때로는 무시하고 홀대하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든 때가 많다”고 남한 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2004년 단신으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대학생 백현성(가명)씨. 그는 “남한 사람들의 따뜻한 환영에 마음을 열었다가도 때때로 당하는 무시와 홀대에 힘들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백씨가 만난 남한 사람, 남한 사회


2004년 한국에 들어온 백씨는 그동안 기쁨과 희망, 좌절과 외로움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했다. 따뜻한 환대에 편안함을 느끼다가도 탈북자들을 여전히 이방인 대하듯 하는 사회 분위기에 수없이 많은 좌절과 외로움을 겪어야 했다.

그가 처음 남한 사람들과 접촉한 것은 탈북자 정착 지원 시설인 하나원에서다. 그곳 강사들은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긴 여정 끝에 한국에 온 백씨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난생 처음 ‘선생님’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이들에게 의지했다. 그러나 일상 생활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그들의 언행은 백씨를 한없이 위축시켰다.

하나원 생활은 남한 사회 적응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의 연속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살다 보니 당연히 자본주의 용어에도 익숙지 않다. ‘자본주의’, ‘다단계 피라미드’ 등 생소한 용어도 어려운 터에 강사들의 핀잔은 견디기 힘들 정도의 모욕감을 줬다.

“그런 것도 이해 못 하냐”는 면박은 기본이다. 지각이라도 하게 되면 “그런 식으로 규율을 어기면 북으로 돌려보낸다”고 겁을 주기도 했다.

6개월의 하나원 생활을 마친 백씨는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가다니….” 북에 있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남한 학생들 중 먼저 다가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탈북 사실을 알고 일시 관심을 보이곤 했지만 그뿐이었다. 생소한 외래어, 낮선 문화는 그가 주변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커다란 벽으로 다가왔다.

영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백씨는 인터넷 번역기를 활용해 원어 수업 발표 준비를 했다. 발표 내용이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었다. 수업 중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민망함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사람 만나는 게 싫어졌고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백씨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안 되고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하니 불편하고 서러웠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버릴 수 없는 꿈…“통일 한국의 주역”

“남한에 정착하지 못한 탈북자들은 영국에서 영어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영국으로 밀항을 시도했다. 화물선 기관실에서 숨죽이며 한 달을 견딘 끝에 영국에 도착했지만 또 다른 사회의 이방인이라는 지독한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동포가 살고 있는 남한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결국 2개월 만에 돌아왔다.

“이곳에서의 삶이 내게는 인생의 하나뿐인 기회였고, 그 기회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백씨는 요즘 탈북자 모임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다.

그는 “남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벽’을 넘는 게 쉽지 않다”면서 “특히 젊은 사람들 중에는 상당수가 통일을 바라지 않고, 색안경을 쓰고 탈북자를 바라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씨의 꿈은 사회복지 전공을 살려 통일 이후 북한 주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다. 남북한 주민 간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무는 데도 앞장설 계획이다.

그는 “탈북자들은 큰 기대를 안고 남한 생활을 시작하지만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기까지 대부분 커다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면서 “우리를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는 동반자로 여기고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성호 기자 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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