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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우리 안의 폭력] 돈버는 기계들 '욱'하다…위험한 '사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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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6-26 19:23:07 수정 : 2012-06-26 23: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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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주축세대 중압감 심해
우울증·위기감 느끼고 방황
고용불안으로 폭력성 심화
“게임 좀 그만해라.”

3월16일, 부산에서 이삿짐센터 직원으로 일하는 김모(46)씨는 평소와 다름 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섰다. 고등학생 아들은 언제나처럼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었다. 김씨는 화가 났지만, 잠을 청했다. 새벽 5시, 잠에서 깬 김씨의 눈에 그 시간까지도 게임 중인 아들이 들어왔다. 김씨는 그만 자제력을 잃었다.

김씨는 컴퓨터를 부수고 아들에게 게임을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집을 뛰쳐나갔다. 이성의 끈을 놓쳐버린 김씨는 안방 침대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고, 2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를 내고서야 꺼졌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김씨에 대해 방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40·50대 중장년층의 폭력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주축인 이들 세대가 오랜 경기침체와 가족해체의 추세 속에서 어느 때보다 큰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장년층은 스트레스를 끌어안은 채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다”며 “해소되지 않고 쌓여가는 스트레스로 인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을 지니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용 불안’ 스트레스, 결국 폭력으로

5일 경기도 부천에서는 잡지사 영업사원 이모(56)씨가 연쇄방화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조사 결과 이씨는 차량과 슈퍼마켓 등지에 4차례나 방화를 시도했다. 이씨는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앞서 2월 부산 사하경찰서는 휘발유를 자신의 몸에 뿌리고 분신자살을 기도한 택시기사 김모(5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김씨는 사납금 124만원을 내지 못해 회사로부터 배차 중지 문자메시지를 받자 이 같은 일을 벌였다.

중장년층의 범죄율 증가는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고용불안이 커진 것이 주 요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는 ‘스트레인(Strain)’ 개념을 꺼냈다. 개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박이나 스트레스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가 형성해 놓은 이상과 개인이 처한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이려는 과정에서 폭력성이 드러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려는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가 커지면서 범죄율이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사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중장년층은 청년층과 노년층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추기(思秋期)’의 위험한 중년


중장년층의 범죄율 증가 현상은 우리 사회의 우발적 범죄 증가율과도 맞닿아 있다.

2010년 전체 강력범죄의 절반을 넘는 50.8%가 ‘우발적’ 동기에서 비롯됐다. 이익과 욕구 충족을 노린 범죄(6.0%)와 비교하면 8배 이상 높은 수치다. 특별한 목적을 갖는 ‘도구적 범죄’와 달리 행위 자체를 통해 감정을 분출하는 ‘표출적 범죄’가 압도적으로 많은 셈이다. 이는 중장년층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에서는 이 같은 중장년층의 불안정성을 ‘사추기’라는 용어로 정의한다. 10대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세대라면 40·50대는 사추기라는 ‘중년위기’ 단계를 겪는 세대라는 것이다.

곽 교수는 “사추기에는 10대 청소년이 겪는 우울증, 위기감 등을 유사하게 느끼고 방황한다”며 “청소년이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비행을 저지르는 것처럼 중장년층의 범죄율이 증가하는 것은 같은 연장선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장년층 자신과 가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오윤자 경희대 교수(아동가족학)는 “우리나라 중장년층은 가족 내에서 ‘돈버는 기계’로 대표되는 도구적 역할에 익숙해 있다”며 “가족 안에서 정서적 위로를 받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과의 원활한 의사 소통은 대부분의 사회문제를 예방하는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도 “자신의 삶과 의미를 되돌아보고 자신을 다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박현호 용인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중장년층의 문제 상황이 범죄로 이어지는 고리를 시급히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앙정부와 기업, 사회단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중장년층의 스트레스와 불안요소를 줄여야 한다”면서 “중장년층의 문제를 체계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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