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내 무덤에…’ 인용하며 옹호
野 “헌법의식 부재” 쟁점화 나서 대선 100일을 앞둔 10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는 그동안 논란이 된 역사 인식 문제를 정면돌파하겠다고 작심한 듯했다. 5·16 군사정변과 유신에 대한 평가는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대표적 공안사건으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 인민혁명당 재건 사건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당장 “헌법 의식의 부재”라며 쟁점화에 나섰다.
박 후보는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혁당 사건 판결과 관련,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해 역사 인식 논란을 키웠다. 이는 사법부가 재심을 통해 사과까지 하며 ‘무죄’로 확정하고, 국가가 수백억원대 손해배상까지 한 판결을 회피하려는 듯한 뉘앙스로 받아들여졌다. 박 후보 캠프 핵심 관계자는 “국민들이 박 후보의 역사인식과 화합행보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들 수 있는 문제성 발언”이라고 우려했다.
인혁당 사건은 1974년 당시 중앙정보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을 구속기소했고, 법원이 이 중 8명에게는 사형, 15명에게는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하지만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가 이 사건이 “고문에 의한 조작극”이라고 밝혔고, 그해 유족들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대법원은 2007년 무죄를 선고했다.
박 후보의 ‘두 가지 대법원 판결’이란 언급에 대해 법조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인혁당 사건 재심 판결은 과거의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는 판결이었다”며 “두 개의 판결이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으로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판결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판사는 “재심은 과거 판결의 효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 (박 후보의)말은 법적으로 따진 게 아니라 정치적인 발언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후보는 유신에 대해서도 “아버지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렇게까지 하면서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했다”고 옹호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후보의 이 같은 인식은 자신의 판단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바탕이란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박 후보 캠프 내에서도 김종인 국민행복특위위원장 등 외부 인사 중심으로 역사인식의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박 후보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그동안 수차례 역사 인식 문제가 도마에 올랐지만 지지율 1위를 내주지 않았다는 자신감도 배어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정성호 대변인은 “박 후보가 모든 것을 과거사로 돌리고 남 탓하는 정치인의 ‘끝’을 보여줬다”며 “현대사마저 부정하는 박 후보가 어떻게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나기천·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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