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러들마다 부르는 게 값…법망 교묘히 피해가 국내 시장 점유율 10%를 넘어선 수입차 업계가 ‘고무줄 가격’ 정책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가격이 워낙 비싼 상태에서 할인폭이 들쭉날쭉하다보니 소비자가 느끼는 혼란도 상당하다. 할인 폭이 중형 수입차 한 대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요지경이다. 심지어 국내에서 인기 있던 차종까지 폭탄할인 대상이 되면서 기존 고객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업체들이 당초부터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긴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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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XJ 벤츠 E클래스 |
본지 취재에서 최근 벤츠, BMW, 폴크스바겐, 렉서스, 재규어, 랜드로버, 포드 등의 일부 차종이 원래 가격에서 10∼20%가량 싼값에 판매되고 있다.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이 깎인다. 새 모델 출시가 임박한 차량이거나 비인기 차종이 대부분이지만, 이미 같은 차를 비싸게 산 소비자로선 기분이 좋을 리 없다.
1억2000만원대의 재규어 프리미엄 세단 ‘XJ’를 사려다가 ‘4200만원 할인’ 제안을 받은 최씨는 “‘중형 수입차 한 대 값을 할인해줄 정도면 도대체 얼마가 남는 걸까’ 하는 생각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BMW 3시리즈에서 벤츠 E클래스로 갈아 타려던 김씨도 “1000만원을 할인해준다니 귀가 솔깃하지만 차를 사자마자 ‘똥값’이 될 게 뻔해서 살지 말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미 지난달에 BMW 520d를 산 정모씨는 “3월에는 할인폭이 줄어들거라더니 한 달 만에 100만원가량 더 떨어져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BMW 520d와 320d, 폴크스바겐 6세대 골프 등 인기 차종이 폭탄할인 대상에 포함됐다는 데 소비자들은 분개한다. BMW 520d와 320d는 지난해 각각 7485대와 4383대가 팔려 수입차 판매 1, 4위를 기록했고, 골프는 3002대가 팔려 7위였다.
한 수입차 영업사원은 “보름 새 차값이 600만원이나 싸지면서 빗발치는 고객 항의를 겪었다”며 “대개 딜러 마진이 많은 브랜드들이 대폭 할인정책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거나 재고를 떨어낸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체 영업사원은 “일시적으로 벤츠와 BMW 등 고가 브랜드끼리, 한 브랜드의 다른 딜러사들 사이의 경쟁과열로 차값이 폭락하기도 한다”며 “간혹 ‘손해 보고 판다’는 얘기가 나오는 경우”라고 밝혔다.
◆“고무줄 할인 법적으로 문제 없어”
수입차 업체들은 “국산차도 할인 없이 차를 파는 경우가 없듯이 우리도 재고로 남기느니 손해를 보더라도 팔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실제 현대기아차,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국산차들도 차값의 3%가량을 할인해 준다. 해외에서는 연식이 지나면 할인하는 반면에 국산차들은 일부 옵션과 디자인을 바꾼 ‘연식 변경 모델’을 내놓으면서 가격을 조정한다. 이때 값을 내리면서 눈에 안 띄는 옵션을 빼 할인 착시효과를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국산차는 실제 할인이라기보다는‘가짜 할인’ 정책으로 고객의 원성을 산다.
반면, 수입차는 그 할인폭이 워낙 큰 데다 할인률까지 들쭉날쭉한 게 문제다. 수입차 간 경쟁이 불붙으면서 한 지역에 여러 딜러사가 들어선 것도 높은 할인 정책을 유발하고 있다.
김재휘 중앙대 교수(심리학)는 “수입차는 희소성과 브랜드, 로열티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가 할인 정책으로 소비자 구매심리를 자극한다”며 “수입차뿐만 아니라 모든 명품 브랜드가 비슷한데, 처음부터 할인율을 소비자가에 반영하면 오히려 고객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수입차 고객은 “몇달 만에 값이 뚝 떨어지면 마음이 상한다”며 “시장경제 논리라지만 비싼 차의 가격을 자주 할인하는 브랜드는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재영 기자, 이다일 세계닷컴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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