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역대 총리 중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처음 참배한 이는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총리였다. 1978년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비밀리에 합사되기 전인 1975년 신사를 찾았다. 그는 ‘사적 참배’라며 공용차를 쓰지 않고 공물 ‘다마구시(玉串)’ 비용도 사비로 냈다. 이후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총리 등도 이런 형식을 빌려 참배했다.
야스쿠니신사를 처음 공식 참배한 총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였다. 그는 1985년 8월15일 각료 18명을 대동하고 야스쿠니신사를 총리 자격으로 참배했다.
야스쿠니신사에 A급 전범들이 무더기 합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자 공식 참배는 더 이상 이뤄지지 못했다. 1992년 11월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총리 등은 일정도 미리 알리지 않고 ‘조용히’ 참배했고, 1996년 7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도 ‘사적인’ 명목으로 참배했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이 출범하면서 야스쿠니 참배 문제가 전면 부각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5년5개월여 재임 기간 해마다 야스쿠니를 찾았고 집권 마지막 해인 2006년 8·15 참배를 단행했다. 한·중은 크게 반발했다. 2005년 중국에선 대규모 반일시위가 벌어졌다. 2006년 9월 집권한 아베 총리는 제구인 ‘마사카키’를 봉납하며 참배를 자제했다.
일본 총리들이 야스쿠니 참배에 집착하는 건 보수층 지지를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 민간 종교법인에서 국가기관으로 탈바꿈하려는 야스쿠니신사 측의 집요한 노력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쓰치 슈헤이(三土脩平) 도쿄대 교수는 “패전 후 미군이 신사를 민간법인화하자 야스쿠니신사와 일본유족회는 1970년대 자민당을 통해 신사의 국영화 법안을 5차례나 추진했지만 실패했다”며 “신사 측은 총리의 참배를 통해 국가기관이 되려는 속셈”이라고 밝혔다.
도쿄=김용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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