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실업률 22.8% '고단했던 시절 반영'
자가용車 858대→91만7천430대, 주택 18만호→103만5천호
부산 감만부두에서 화물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50년만의 상전벽해'
부산시가 올해로 직할시 승격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50년 동안 부산은 어떤 변화를 보이고 있을까.
1963년 직할시로 승격된 부산시는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자 수출 관문으로써 급격한 도시 팽창과 함께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주역으로 부상할 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일궈냈다.
◇대한민국 제2도시이자 글로벌 거대도시로 '우뚝' = 50년 전 당시 부산시 시정 자료에는 360.25㎢의 면적에 인구는 136만630명, 행정구역은 6개 구·7개 출장소, 공무원 수는 2천449명으로 기록돼 있다.
50년이 지난 지금 2012년 말 기준으로 부산의 면적은 배 이상 늘어난 768㎢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인구도 357만7천344명이 거주하는 거대도시로 변모했다.
도시의 팽창과 함께 행정수요도 급격히 늘어 행정구역은 15개 구, 1개 군으로 확장됐고 공무원 수는 50년 전과 비교해 4배가량 증가한 1만6천356명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관문으로서 글로벌 도시로의 성장을 증명하듯 등록 외국인 수는 50년 전 4천213명에서 3만5천383명으로 늘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 같지만 7억4천만원에 불과했던 부산시의 1년 예산(일반회계 기준)은 9조3천873억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어렵고 힘든 시절 연간 1억4천만원(전체 예산의 19.63%)이었던 복지·보건분야 예산은 2조3천878억원(전체예산의 29.1%)으로 늘었다.
◇중심항만·산업도시로서 국가경제 '견인' = 부산항을 근간으로 우리나라 수출입의 관문 역할을 담당하면서 1963년 각각 5천600만 달러와 2억2천400만 달러였던 수출과 수입은 50년 뒤 각각 145억6천200만 달러와 147억200만 달러에 달하는 세계 무역의 중심도시로 성장했다.
산업구조는 서비스업 78%, 제조업 9.3%, 건설업 3.7%, 농림어업 9.0%이던 것이 서비스업 71.3%, 제조업 19.3%, 건설업 5.9%, 농림어업 1,1%로 재편됐다.
항만시설은 단순 일반화물만 처리하던 제1∼4부두와 중앙부두에서 신항 건설로 연간 1천618만TEU를 처리하는 10개 부두, 42선석의 세계 5대 항만으로 발돋움했다.
금융기관 수와 예금액은 40개소 487억원에서 602개소 48조원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공항은 국내선만 운항하던 부산국제공항(수영비행장)을 연간 10만3천920명이 이용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874만9천153명의 내·외국인이 부산을 드나들고 있다.
각종 경제 관련 지표 중 50년 전 실업률이 22.8%(2012년 4.1%)에 달했다는 대목이 있다.
한국전쟁 후 피폐했던 부산지역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지를 짚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난을 딛고 재기…풍요해진 삶 = 50년 전 18만732호(보급률 73.6%)였던 주택은 103만5천110호(보급률 108.6%)로 늘었다.
294㎞였던 총 도로연장은 3천724㎞로, 54.9%였던 상수도 보급률은 99.9%로, 28.53%였던 하수도 보급률은 99.1%로 달라졌다.
3천810대에 불과했던 등록 차량수는 117만2천11대로, 858대였던 자가 승용차는 무려 91만7천430대로 증가했다.
279대와 544대였던 시내버스와 택시는 2천511대와 2만5천60대로 늘었다.
초·중·고교 수는 250개에서 611개로, 대학수는 7개에서 23개로 증가했으며 병의원은 829개소에서 4천395개소를 증가했다.
재미난 사실은 현재 28개소인 영화관(극장)이 50년 전 50개소에 달했다는 사실. 부산국제영화제를 중심으로 영화·영상도시로서의 부흥을 꿈꾸는 부산이 되돌아봄 직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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