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시설에선 문전박대 “상담·치료시설 확충 절실” 강원도 강릉에 살던 지적장애인 A(23)씨는 지난해 2월부터 10개월간 20여차례에 걸쳐 이웃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A씨 부모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A씨는 성폭행 현장을 목격한 주민의 신고로 끔찍했던 범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A씨의 고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악몽을 떨치기 위해 각종 보호시설의 문을 두드렸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쉼터와 병원, 장애인시설을 전전했다. 겨우 찾은 여성쉼터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성폭력 피해자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동료들은 A씨에게 생각하기도 싫은 사건 경위를 물어보거나 “정말 피해자가 맞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2차 피해’를 안겨준 것. 3개월가량을 방황하던 A씨는 서울까지 올라온 후에야 한 ‘그룹홈(소규모 공동생활시설)’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이처럼 각종 범죄로 피해를 본 장애여성들이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하는가 하면 일부 시설에선 미흡한 시설 운영으로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4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전국 성폭력상담소 등을 통해 접수된 장애인 성폭력 상담 건수는 2008년 1만1442건에서 2012년 1만7928건으로 56.6% 증가했다. 가정폭력 상담도 같은 기간 1383건에서 1355건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전국에는 22개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이 운영 중이지만, 장애인을 수용할 수 있는 전문시설은 4곳뿐이다. 정부는 내년에 전문시설 2곳을 더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인 ‘원스톱지원센터’에서 피해 장애인들을 유관 기관과 연계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장애인 범죄 피해자를 상대하는 보호시설이나 쉼터의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서울의 한 장애인 보호시설 관계자는 “범죄 피해자는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범죄 피해를 주장하는 장애인의 심리 상태는 극도로 불안정하다”면서 “이들이 다른 장애인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장애인 자립지원단체인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단장은 “범죄에 노출된 장애인의 심리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전문시설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면서 “기존에 범죄 피해 장애인을 도맡던 기관들도 지원 부족으로 이 일을 맡길 꺼린다”고 전했다.
시설 운영 방식의 문제점도 적지 않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은 친족이나 이웃 주민 등에 의한 범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를 위해 긴급하게 생활 공간을 옮겨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 장애인 보호시설은 ‘보호자의 신청을 받아 장애인을 위탁 관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친족에 의한 범죄 발생 땐 피해자 보호가 어렵다.
정선형 기자 linear@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