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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희망이다] ④ 병마와 싸우는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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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1-14 06:00:00 수정 : 2013-11-14 10: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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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암 큰딸·생계난 겹쳐… 그래도 아이들 꿈은 지켜줄 것” 정화연(31·가명)씨는 아직도 어두컴컴한 ‘터널’ 속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 터널 속을 걸어왔지만 출구가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다. 정씨의 남편(32)은 집을 나간 뒤 3년째 연락이 닿지 않는다. 큰딸 혜원이(8·가명)는 수모세포종이라는 뇌종양을 앓고 있다. 둘째 혜진이(5·가명)를 포함해 세 식구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작은 반지하방에서 산다.

◆연이어 닥친 불행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청소년기부터 혼자 살아온 정씨는 22세 때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이듬해 혜원이를 낳았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특히 시부모와 불화가 심했다. 무리하게 돈을 빌려 개업한 치킨집까지 망하면서 남편은 빚쟁이를 피해 도망다녔다. 남은 가족은 하루 한끼도 먹기 어려웠다.

혜원이가 네 살 때 기운이 없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두통 감기인 줄만 알았는데, 혜원이의 머릿속에서 크기가 4.2㎝나 되는 종양이 발견됐다.

“사진 속 허연 덩어리를 본 순간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렸어요.”

현기증을 일으킨 정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혜원이를 큰 병원으로 옮겨 일주일 만에 머리뼈를 절개하고 소뇌에 있던 종양을 제거했다.

항암치료에 들어가자 혜원이의 여린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기 시작했다. 혜원이는 머리를 깎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날 바닥의 머리카락을 주우며 흐느끼는 엄마를 발견한 혜원이는 “엄마, 나 그냥 머리 자를래” 하고 말했다.

미용실에 가서도 머뭇거리는 엄마 대신 “저 빡빡 밀어주세요”라고 외치는 혜원이를 미용사는 잠시 쳐다보더니 “참 씩씩하네” 하면서 머리를 깎기 시작했다. 정씨는 그런 딸의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항암치료를 받던 중 큰 위기가 닥쳤다. 정씨 수중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은 소식이 뚝 끊긴 상태였다. 혜원이의 병이 발견되기 직전 연락이 다시 닿은 친정 어머니의 도움으로 그동안 근근이 버텨왔는데, 그 사이 어머니와도 사이가 틀어져 있었다. 병원을 오갈 교통비마저 버거웠다. 급기야 혜원이의 항암치료가 중단됐다.

자포자기 심정이 된 정씨는 화장실 앞에 앉아 칼로 손목을 그으려고 했다. 순간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두 딸이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 표정을 보니까 ‘혜원이는 그저 살 수 있다는 거 하나로 저렇게 살고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뭘 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씨는 두 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정화연(31·가명)씨가 소아암을 앓고 있는 큰딸 혜원(8·가명), 둘째 혜진(5·가명)이와 함께 서울 신림동의 작은 반지하방의 벽에 붙어있는 공부카드를 보고 있다. 정씨의 남편은 3년째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이제원 기자
◆다시 살아보려는 노력

이때부터 정씨는 동 주민센터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주민센터에서는 ‘시소와 그네’라는 영유아통합지원센터를 연결해줬다. 그곳을 통해 정부 지원금과 민간단체 후원금을 받아 병원비와 월세 일부를 해결했다. 주민센터를 통해 긴급생계비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 병원의 복지사업팀을 찾아가 치료비 지원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6개월 넘게 중단됐던 항암치료가 다시 시작됐다. 혜원이는 지난해 10월까지 치료를 받고 지금은 매달 검사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언니가 오랜 기간 병과 싸울 동안 주변에 맡겨졌던 혜진이의 놀이치료도 하게 됐다. 속이 깊은 혜진이는 항상 언니 걱정을 먼저 한다. 하지만 언니가 병원에 가는 날에는 ‘엄마랑 언니가 사라져버릴까봐’ 늘 긴장하고 무서워한다.

정씨도 정신과 검사를 받게 됐다. 입원을 권유받았을 정도의 심각한 우울증은 1년 넘게 치료하면서 좀 나아졌지만 불면증이나 두통은 여전하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스스로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노력 중이다. 오랜 기간 주변과 단절돼 살았던 정씨는 그간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남에게 내보이기 싫었다.

“자존심 때문에 세상에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 상황에서는 나만 지키는 게 다가 아니었어요. 아이들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더라고요.” 정씨는 얼마 전 혜원이 이야기를 한국사회복지협의회의 수기공모에 내 당선되기도 했다.

◆여전히 답답한 현실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혜원이의 항암치료를 마쳤지만 지난 1년은 살얼음판을 걷듯 어려웠다. 또래보다 1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한 혜원이는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못했다. 정씨는 학교에 몇 번을 불려갔다. 이 과정에서 혜원이에 대한 주변의 편견에 가족 모두 상처를 받았다.

“아직 사회생활을 많이 못해 그렇지 심리검사에서도 별로 문제가 없는 아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앤 줄 알고 있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때는 정말….”

엄마가 돈이 없다는 걸 아는 혜원이는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사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 마음이 안타까워 정씨는 아이들을 더 좋은 데서 살게 해주고 책도 많이 사주고 싶다. 그러나 항암치료를 재개하면서 긴급으로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한동안 숨통이 트였던 것이 남편의 존재 때문에 조만간 지원이 중단된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다.

지원을 계속 받으려면 이혼소송을 내야 하는데 정씨에게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수급자가 된다 해도 정씨는 제도상 ‘근로능력’이 있기 때문에 나가서 일을 해야 한다. 혜원이를 보살피며 요리에 자신이 생겨 요리사로 일하고 싶은 꿈도 생겼지만, 방과후 교실이나 공부방에서 겁을 내며 받아주지 않는 혜원이를 집에 두고 나가기엔 맘이 편치 않다.

정씨 가족에게는 모든 어려움이 아직 진행형이다. “하루하루 넘기기가 힘이 들어요. 그래도 ‘엄마가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혼내도 엄마가 좋아’ 하는 아이들 때문에 버티고 있네요.” 여전히 터널 속을 헤매고 있는 혜원이네는 언제 터널의 출구를 만나게 될까.

윤지희 기자 phh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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