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에 한 번쯤 ‘아들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릴까’하는 생각을 해요. 요즘에는 남편과 아들이 단둘이 있을 때 외출을 못해요. 부자가 서로를 해칠 것 같아서. 벌써 25년째입니다. 하지만 국가는 가정의 책임으로만 떠넘기고 나몰라라 하고 있어요. 이 같은 탓에 제도적인 장치와 지원체계가 미흡하기 짝이 없어요….”
〈성인발달장애인 어머니 이모(52)씨 인터뷰 중〉
국내에서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포함한 발달장애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부터다. 15년이 되지 않았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전국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진 것도 2011년이 처음이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 등록된 발달장애인 19만163명 가운데 19만162명이 1∼3급(전체 6급)의 중증장애를 앓고 있다. 4급은 한 명이다. 10년 전인 2003년(11만7760명)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들은 제대로 된 사회복지시스템이 없어 가족의 부담으로 떠넘겨진다.
◆내년에는 20만명 돌파?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을 포함하는 발달장애인은 전체 등록장애인(251만1159명)의 7.57%에 이른다.
발달장애인은 또 환경적 요인 등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발달장애아동은 전체 장애아동(8만4458명)의 61.4%(5만1874명)나 된다. 장애아동 10명 가운데 6명은 발달장애아동인 셈이다.
학령기가 지나 특수학교나 시설보호 등 최소한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성인 발달장애인은 13만8289명으로 전체 발달장애인의 72.7%에 달한다. 발달장애인의 평균 지능지수는 ‘50’ 정도이다. 비장애인 7세 아동의 평균 지능지수는 90∼100이다.
이처럼 발달장애인은 언어와 인지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스스로 의사를 전달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자기조절이 어렵고 사회생활은 물론 혼자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장애인이 대다수다.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발달장애인에 대한 돌봄과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2011년 보건복지부와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발달장애인 200명과 보호자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보고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68.3%는 일상생활에서 남의 도움이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생활을 혼자 감당할 수 있다는 답변은 10.2%에 그쳤다. 대부분의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자녀의 손발이 돼 평생을 살아간다.
◆발달장애 부모가 죽어간다
세계일보 취재팀이 만난 발달장애인을 둔 10여명의 부모 모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털어놨다. 아이가 발달장애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끝이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지적장애를 앓는 딸(1급)을 둔 최모(52·여)씨는 요즘 여름 옷을 입고 밖에 나가겠다는 딸과 날마다 전쟁을 치른다.
최씨는 “하루 종일 딸과 실랑이를 하다 보면 한순간 넋이 나갈 때가 있다”며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지난해 내놓은 ‘2011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적장애인의 76.7%, 자폐성장애인의 92.2%가 부모의 도움으로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동거인의 지속적인 도움 필요 여부’는 100%로 나타났다. 이들은 혼자서는 살 수 없어 부모나 가족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발달장애인 실태보고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우울 정도는 의심 척도인 16점을 훌쩍 넘긴 19.43점이었다. 일반인의 우울 점수(5.03점)의 4배에 달했고, 저소득층의 우울 점수(11.92점)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치다.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44.3%는 ‘보호하고 있는 장애인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다’고 답했다. 21.1%는 ‘근무시간을 줄였다’고 응답했다. 발달장애인 보호자의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상황이 극도로 위험 수준임을 보여준다.
최복천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장은 “발달장애인의 부모는 정신적·육체적 시달림, 경제·정신건강상의 문제, 자녀의 미래에 대한 염려 등으로 심각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최 센터장은 이어 “장애인 가족 복지정책은 가족의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면 대책을 마련하는 수준에 멈춰 있다”면서 “건강한 가족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책이 마련되고,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체계적인 사회적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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