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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올해도 ‘유치원 입학 전쟁’

입력 : 2013-12-17 06:00:00 수정 : 2013-12-17 13: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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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같은 국공립유치원 입학… 추첨에 온가족 동원 유치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올해도 어김없이 ‘유치원 입학 전쟁’이 벌어졌다. 지난해부터 횟수 제한없이 복수지원이 가능해지면서 입학경쟁률이 수십대 일을 넘긴 곳이 속출했다. 

비용이 비교적 싼 공립유치원이나 우수한 교육프로그램과 시설을 갖춘 사립유치원 등 선호도가 높은 곳에서는 예비 원생의 일가친척까지 추첨에 동원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치원을 찾아 헤매는 사연은 저마다 다양하지만 마지막에 웃으려면 ‘로또’에 당첨되는 것처럼 운이 좋아야 한다. 확률 싸움인 추첨으로 결국 입학증을 쥘지 말지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공평함의 역설


서울지역 공립유치원 추첨일이었던 지난 11일 은평구 진관유치원 4층 강당. 초등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동생, 아들·딸, 손주를 위해 추첨 경쟁에 뛰어든 수백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오후 3시쯤 우선선발 대상인 국가보훈대상자 전형이 끝나고 본격적인 추첨이 시작됐다. 첫 순서인 만3세(2010년생) 에듀케어반(종일반)은 남아, 여아 2명씩 모집하는데 각각 26명, 23명이 지원했다. 추첨은 원장이 종이상자에 담긴 추첨공 가운데 첫번째 당첨자를 뽑고, 당첨자가 나와 다음 당첨자를 뽑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됐다.

한명 한명 당첨자가 나올 때마다 ‘오∼’하는 부러움 섞인 탄식이 터져나왔다.

“내년 초 복직해야 하는데 막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나이에 맞는 반이 없어요. 집 근처에 미달된 사립유치원이 있어 급한대로 거기라도 보내야하는데 원비 댈 생각을 하면 착잡하네요.”

초등학교 1·3학년과 네살짜리 딸을 둔 다자녀 직장맘 정기영(41·여·가명)씨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탈락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정씨는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사정이 있겠지만 나 역시 국공립유치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정씨가 첫째와 둘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때는 다자녀 전형이 있어서 공립 유치원에 보낼 수 있었지만, 이번엔 법정저소득층과 국가보훈대상자만 우선순위로 분류돼 11.5 대 1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은평구 내엔 국공립 유치원이 11곳 더 있다. 하지만 대부분 통학차량을 운영하지 않아 정씨는 지원할 수 없었다. 첫째·둘째 등하교 안전도 신경쓰이는 상황에서 막내까지 원거리로 보낼 수 없어서다.

그는 “사립유치원에 다니면 오후 돌보미를 따로 구하는 경우가 많던데, 사립유치원비에 돌봄 비용까지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씨 등 다른 참석자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당첨된 학부모 A씨는 입학원서를 받아들고 미안한 듯 서둘러 자리를 떴다. 어린이집에 아들을 보내고 있다는 A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서를 넣었다가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아이가 어린이집보다 넓은 곳에서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공립·사립유치원 한곳에 넣었다”며 “사립도 내년에 신설되는 곳이라 선착순 모집을 해 이미 붙은 상태인데 공립까지 당첨됐다. 진짜 운이 좋은 것 같다”며 웃었다. 모두에게 공평해보이는 추첨제가 불공평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2014학년도 서울 공립유치원 신입생 모집 추첨일이었던 지난 11일 은평구 진관유치원 풍경. 이 유치원은 60명 모집에 387명이 몰려 평균 6.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진관유치원 제공
◆승자독식 구조


공립유치원에 떨어진 학부모들의 상심은 탈락 이후 대책을 찾는 과정에서 분노로 변한다. 공립유치원에 당첨되면 입학금, 교육비가 전액 무료지만 탈락하는 순간 부담이 월 수십만∼수백만원으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립유치원은 누리과정 지원금 22만원을 받더라도 수업료와 차량운영비, 방과후 특성화활동비 등으로 매달 15만∼50만원을 지출해야 한다. 입학 첫달에는 원복비와 체육비, 입학금까지 더해져 많게는 80만∼90만원을 내기도 한다.

어린이집 운영시간이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로 정해진 것과 달리 유치원은 정규수업이 2시에 끝난다. 맞벌이 가정은 돌보미를 구하거나 종일반을 신청해야 해 더 많은 돈이 든다. 게다가 종일반 모집 인원 자체가 전체 모집 정원의 반도 안되는 곳이 대부분이다.

사립유치원이라도 들어갈 수 있으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여기서도 탈락한 맞벌이 가구는 돌보미를 이용하거나 유아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이 경우 매달 100만∼200만원이 들어간다. 이번에 사립유치원 서너 곳에 지원했다 전부 떨어진 박은미(가명·여·성북구)씨는 “주변에 공립유치원은 아예 없어 포기했고, 친정 부모까지 동원해 추첨에 나섰던 사립유치원들은 모두 떨어졌다”며 “이런데도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누리과정 지원금의 절반도 안되는 보육료 10만원 뿐”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치원 입학 전쟁을 끝내기 위한 해법으로 학부모, 전문가 모두 ‘공립유치원 확대’를 주문한다.

두살 터울 남매를 둔 박선영(35·여)씨는 “사립유치원 학부모에게는 월 22만원을 지원해도 자비부담금이 워낙 많기 때문에 혜택을 받는다거나 저렴하게 이용한다는 느낌을 못받는다”며 “차라리 그 돈으로 국공립유치원을 더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취학 전 교육단계에서 국·공립 교육기관(유치원·어린이집)의 비중은 1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8.1%에 한참 못 미친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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